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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2.03 풍수지리 용어
  2. 2024.03.10 시산제
  3. 2017.02.21 차례상
  4. 2017.02.14 경주최씨가훈
  5. 2017.02.08 경주 덕천리 유적과 돌산 고허촌과 소벌도리
  6. 2017.01.06 慶州崔氏 上孫 世系圖
가례2025. 2. 3. 15:32

풍수지리 용어

 

(1) 청룡(靑龍)과 백호(白虎)

혈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좌우 양측에서 혈장을 감싸고 있는 산으로서 좌측이 청룡우측이 백호라고 한다.

청룡과 백호는 생기(生氣)를 혈로 뭉쳐지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너무 멀거나 가까이 있어도 안 되고 너무 높거나 낮아도 안 되므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청룡과 백호는 용의 본체에서 나와 만들어진 것이 상격(上格)이며다른 용이 와서 만들어져도 그 다음으로 길격(吉格)이다그러나 용호(龍虎)의 허리가 잘라지거나 너무 낮아 혈장을 감싸지 못하면 흉격(凶格)이다용호가 머리를 치켜들고 마주보면서로 다투는 격()이라 흉하고 용호 중에서 한쪽이 없을 때는 반드시 물()이 와서 대신해야 길격이다또한 청룡은 장손(長孫또는 남자백호는 지손(支孫또는 여자를 뜻한다.

 

(2) 안산(案山)

안산은 혈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안산은 앞에 놓인 책상과 같은 것으로 바르고 수려해야 상격이며혈보다 높아서는 흉격이다.

혈은 안산이 없으면 생기가 멈추지 않고 물이 그냥 빠져나가기 때문에 혈에 기가 뭉쳐지지 않는다그러므로 안산이 앞에 있어 내기(內氣)를 융취(融聚)해야만 비로소 옳은 혈을 맺을 수 있다.

(3) 조산(朝山)

조산은 안산 너머로 보이는 멀고 높은 산을 말하며조산은 손님 산이라 하여 주인 격인 혈과 책상격인 안산을 앞에 두고 대좌하는 형상이므로 조산이 높고 충전할수록 길격이며조산이 유정(有情)하면 왕후장상이 나오며조산이 없을 경우에도 혈을 맺는 경우가 있다.

(4) 좌보우필(左補右弼)

좌보우필은 용과 혈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돌출하여 혈장을 보호하고 있는 산을 말하며청룡과 백호 다음으로 귀한 산으로 용혈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높고 낮음과 멀고 가까움 등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길격이다.

(5) 낙산(樂山)

낙산은 혈의 뒤를 보호하는 산이며용이 곧 바로 밀고 내려와서 결혈(結穴)된 혈성(穴星)은 낙산이 필요하지 않으나 횡룡혈・측뇌혈・몰골혈 등에서는 반드시 낙산에 의지해야만 혈이 융결(融結)되는 것이다.

풍수지리서에서 말하는 산의 사세(四勢)란 좌측을 둘러싼 능선을 청룡우측을 둘러싼 능선을 백호라고 하며앞을 주작후면을 현무라 하는 사방의 산세를 말한다.

현무가 뒤에서 머리를 드리우고 주작은 앞에서 날개를 치듯이 춤을 추며 좌청룡은 혈처(穴處)를 감아주고 우백호는 순한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서 맞이하는 형세가 되어야 길격 이지만청룡과 백호가 서로 다투듯이 쟁투하고 현무가 머리를 들고 앞에 있는 주작이 보고도 보지 못한 채 외면하고 무정하게 산이 달아나면 불길한 것이다.

남방의 주작이 폭포수로 되어 그 물소리가 항시 슬프고 처절하게 들리면 그 주인이 화를 면치 못하며 그 소리가 크면 멸문의 화를 당하고 작은 소리가 들려도 과부와 홀아비를 면치 못한다그러나 물이 흘러가는 물소리가 옥구슬을 굴리듯 맑은 소리는 그 주인이 공경대부(公卿大夫)에 오를 상()이며항시 즐거움이 있고 주산(主山)의 지맥이 청룡과 백호가 다정히 감아주어 마치 서로 포옹할 것 같으면 길격이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방위가 이기법(理氣法)에 맞으면 길하다.

앞에 흐르는 물이 양양(洋洋)하고 유유(悠悠)하여 마치 혈장을 둘아 보며 머뭇거리듯 하고 안산이 둘러 있는 사이를 물이 들어와서 다시 나가는 것을 볼 수 없으면 그야말로 득수득파(得水得破)가 생기가 충만하여 부귀와 장수가 보장된다.

 

(6) 명당진혈(明堂眞穴)

명당진혈에는 문필귀인사(文筆貴人砂)가 조안(朝案)을 비춰주거나 삼길육수(三吉六秀)등 길방(吉方)에서 혈장과 합국(合局)되는 방위에 귀봉(貴峰)이나 바위 등이 있으면 길사(吉砂)라 하고그 반대로 되는 것을 흉사(凶砂)라 한다해당 방위에 귀사(貴砂)가 있다고 해도 혈장이 이기법(理氣法)에 맞고 합국이 되어야 비로소 크게 발복하는 법이다또한 음택 풍수에서는 명당진혈이 풍수 원리에 부합해야하나양택 풍수에서는 집의 구조와 방향 등 실질적으로 그 집에서 거주하는 사람에 따라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7) 길사(吉砂)

길사는 부귀사(富貴砂)로서 산형이 수려하고 장엄하여 맑고 아름다우며 다정(多情)한 산의 모양을 말하며그 형상이 합당해도 살격(煞格)으로 산모양이 험하고 추악하여 부서진 산은 흉격(凶格)이다.

주변에 나타나 있는 형상(形狀), 위치(位置), 대소(大小및 원근(遠近)이 혈심(穴心)에 균형과 안정을 갖게 하는 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8) 문필사(文筆砂)

문필사는 수려한 화성체(火星體)의 붓끝처럼 뾰족하게 생긴 산이며문필사가 조안을 바로 비추거나 길 방에서 조응하면 집안에 신동이나 수재가 나오고 과거에 급제하는 자손이 배출된다.

(9) 무성사(武星砂)

금성체(金星體)로 봉우리가 웅장하고 장엄하게 조안을 비추거나 주산(主山), 현무 혹은 길방에서 조응하면 무과 급제하는 자손이 나오며나라를 지키는 명장이 배출된다.

(10) 어병사(御屛砂)

목성체(木星體)의 귀봉(貴峰)이 아름답고 장엄하게 병풍처럼 펼쳐지고 중후한 토성체(土星體)의 산형이 되어 조안을 비추거나 현무방에서 펼치면 아주귀한 인물이나 왕후가 배출된다.

(11) 고축사(誥軸砂)

일명 전고(展誥)라고도 하며토성체(土星體)의 두 끝에 화성체(火星體)의 각이 뿔같이 일어난 기이 한 귀사(貴砂)로서 이런 사()가 조안을 비추거나 귀방(貴方)에 있으면 집안에 재상이나 부마가 나온다.

(12) 화개삼태사(華蓋三台砂)

세 봉우리가 다정하게 생긴 귀사(貴砂)로서이런 산이 조안을 비추거나 길방에 있으면 삼형제가 등과(登科)한다.

(13) 천마사(天馬砂)

산의 모양을 하늘을 나는 용마처럼 모양이생긴 사()로서 이런 산이 조안을 비추면 귀인녹마(貴人綠馬)라 건오방(乾午方)에서 있으면 속발대귀(速發大貴)한다.

예로 강원도 춘천시 서면 현암리 앞 산의 형태가 천마사이다.

(14) 관모사(冠帽砂)

산의 모양이 마치 관모(冠帽)와 비슷한 사()로서 단정하고 아름다운 관모사가 조안을 비추거나 귀인방(貴人方)이나 관대방(冠帶方)에 있으면 주로 집안에 소년등과와 지방장관이 나온다.

(15) 보개사(寶蓋砂)

토성(土星)의 중앙에 소형 금체(今體)가 돌기된 귀사(貴砂)로써 혈장을 비추거나 수구(水口또는 관록방(官祿方)에 서 있으면 도백(道伯)이 나온다.

(16) 복종사(伏鐘砂)

종을 엎어 둔 모양의 산으로 이런 산이 조안을 비추거나 현무사(玄武砂)가 되면 자손이 창성(昌盛)하고 큰 부자가 된다.

(17) 어로사(御爐砂)

토성(土星)과 금성(金星)이 상생되는 크고둥근 산 모양의 귀사(貴砂)로서 토성 위에 봉긋하게 솟은 어로사가 조안을 비추거나 현무사가 되면 부귀쌍전(富貴雙全)이다.

(18) 아미옥대사(蛾眉玉帶砂)

반월형의 단정하고 청아한 미인의 눈썹과같은 귀사(貴砂)로서 이 귀사가 조안을 비추거나 귀인방(貴人方)에 있으면 문장가나 임금을 모시는 비빈(妃嬪)이 나온다.

(19) 옥당귀인사(玉堂貴人砂)

화산형(火山形)의 산 아래 수려하게 서 있는 목성체(木星體)의 산이며 이 옥당귀인사가 조안을 비추거나 주산(主山)의 현무사가 되면 집안 대대로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나온다.

옥당귀인사는 충천열립(衝天列立)한 염정화성산하(廉貞火星山下)에 수려단정(秀麗端正)하게 높이 솟은 귀인봉(貴人峰)이다.

(20) 장원필사(壯元筆砂)

방정(方政)한 일자문성(一字文星)에 우뚝 솟은 문필봉(文筆峰)으로 된 산을 말하며이런 귀사(貴砂)가 조안을 비추거나 귀인방에 솟아있으면 집안에 문명(文名)으로 이름을 떨치는 자손이 나온다.

 

(21) 맥(脈)

용처럼 사용되기도 한다용이 형태에 대한 이름이라면맥은 흐름에 대한 용어이다산이 이어짐을 의미한다계속 이어짐을 과맥이라 하는 데그 형태로서 고맥・저맥・단맥・장맥 등이 있다.

(22) 혈(穴)

용맥 중에서 가장 생기가 있는 곳을 말한다음택에서 관이 들어가는 곳이다침구학에서도 이란 용어를 사용한다눈으로 생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매우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몇 가지 형태로 혈을 정한다.

계속 맥으로만 이어지면 지기가 모이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에 혈이 되지 못한다맥이 그친다는 것은 산이 끝나고 논밭이 되는 경우이다맥이 그치면 지기가 계속 흐르지 못하고 그곳에 머물기 때문에 많이 몰리게 된다이런 곳이 평평하여 묘지로 쓰기에 여유가 있는데이곳을 곧 혈이라 하여 정혈을 한다가파르거나 뾰족하거나 하면 혈이 되지 못한다평평하다고 하여 맥과 맥 사이의 밭은 절대 금물이다맥상에서 평평한 곳을 의미한다.

(23) 사(砂)

혈 주위에 있는 산이나 바위건물을 사()라고 부른다혈보다 높은 주위의 물체는 혈에 영향을 미친다좌우룡안산주산조산비석등석 또는 혈 위에 있는 바위가 모두 이에 속한다물론 이들의 형태로도 길흉을 분별하지만특히 나경의 인반중(人盤中針)으로 방위를 판별하고 이들 방위(24방위)를 성수오행으로 분류하여 생극(生剋)관계까지 본다.

 

(24) 주산(主山)

혈 뒤에 가장 혈과 가까이 있는 산을 말한다이른바 뒷산이 이에 해당한다마을 뒷산이 가지()를 이루며 내려와 마을 뒤에서 그치면 이곳에는 많은 묘지가 있기 마련으로어느 묘지에나 주산은 있다따라서 주산이 얼마나 힘차고 아름다운가도 혈에 영향을 미치는데이 주산에서 혈까지 맥으로 이어져야 좋다.

(25) 입수맥(入首脈)

주산에서 혈까지 연결된 맥을 말한다맥 중에서도 혈로 막 들어가려 하는 곳을 입수라고 하며여러 가지 모양으로 분류 관찰할 수 있다이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곳이 끊어지거나 흠집이 나면 혈이 영향을 받는다.

(26) 명당(明堂)

이는 혈 앞의 토지로서 마당과 같은 곳이다일반 묘지에서는 이곳이 논밭으로서 반듯해야 좋다만약 명당이 기울어져 경사를 이루면 혈이 불안해 보이고 균형을 잃는다명당을 보고 좋은 혈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하는 만큼 혈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마당이 안산 밖에 또 이루어져 있을 때이를 외명당이라 칭한다.

 

(27) 득수(得水)와 파구(破口)

물이 처음 보이는 곳이 득수이고물이 흘러나가 마지막으로 보이는 곳이 파구이다만일 샘물이 있다면 이곳이 득수가 되며계곡에서 처음 물이 나는 곳도 득수이다이런 곳을 내득수라고 한다면외부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처음 보이는 곳이 외득수가 된다내득수가 명당에서 만났다가 다시 밖으로 흘러 나갈 때 이 물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곳바로 이곳을 파구라고 한다득수와 파구는 매우 중요하다특히 파구는 좌향을 결정하는 데 사용되는 포태법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

풍수지리에서 물이란 바람땅과 함께 중요한 만큼 그의 중요성이란 두말할 필요가 없다용이 물을 만나면 기가 흐르지 못하고 그친다이 때문에 기를 모으는 일을 물이 담당하게 된다.

(28) 만두(巒頭)

만두란 혈 뒤의 입수룡에서 약간 돌출한 곳을 말한다이를테면 혈 뒤에서 고분처럼 조금 튀어나오거나 작은 바위 등이 튀어나온 곳을 말한다다시 말하면 물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의미의 분수척상(分水脊上)이다.

(29) 좌향(坐向)

좌향이란 음택에서 관의 방향을 말한다관에 시신이 들어있을 경우에 머리 부분이 좌가 되고 다리 부분이 향이 된다결국 좌와 향은 180°로 대칭이 되는 방향인 것이다좌향이란 아주 중요한 것으로 풍수의 모든 것을 좌향을 구심점으로 한다좌향을 결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이런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는 도구가 바로 나경이다.

좌향이란 혈의 이름도 된다예를 들면 자좌오향의 묘가 있다면 이 묘의 길흉은 자좌오향으로 논하기 때문이다또한 주택에서는 현관이 향이고빌라원룸아파트에서는 앞 베란다가 향이다.

 

(30) 규봉(窺峰)

()의 바깥쪽에서 혈을 향하여 언뜻언뜻 넘겨다보는 작은 산봉우리를 말한다.

(31) 박환(剝換)

산맥이 깎이거나 풍화작용 등으로 부드러워져서 강력하고 험한 용맥이 약하고 부드러운 용맥으로 변환된 것을 말한다산세의 기가 부드러워졌으므로 용의 흉살(凶殺)도 없어졌다고 본다.

 

(32) 나경(羅經)

포라만상(包羅萬象경륜천지(經綸天地)’에서 ()’자와 ()’자를 따서 나경이라 하며이는 풍수지리학에서 방위의 근본으로서 일명 패철이라고도 한다외형은 둥근 판 위에 남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있고눈금으로 표시하여 측정에 필요한 요소를 새겨 넣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33) 사신사(四神砂)

터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안산 주산의 네 개의 산을 말하며또한 안산을 전주작(前朱雀주산을 후현무(後玄武)라고도 한다양택 풍수에서는 좌・우측의 건물이나 물체 등을 좌청룡이나 우백호로도 본다.

 

(34) 국(局)

(穴과(砂가합하여 이루어진 형태.

(35) 진산(鎭山)

한 지역을 중심으로 가장 큰 산.

(36) 용(龍)

땅의 기복을 가리키며 마치 그 모양이 용과 같다는 데서 유래하여산을 말하며 산의 정상으로부터 사방으로 뻗어 나간 줄기 즉땅의 기복을 말한다.

(37) 용맥(龍脈)

생기를 품고 흘러가는 에너지 통로를 가리키며보통은 산줄기나 산맥.

(38) 백두대간(白頭大幹)

국토를 산줄기와 물줄기를 근간으로 질서와 체계를 가지고 해석한 한국 고유 지리 사상.

 

(39) 중조산(中祖山)

태조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혈 쪽으로 내려오면서 웅장함을 갖춘 산.

(40) 간룡(看龍)

산맥의 내왕(來往)을 관찰하고그 진위를 생사(生死)를 보는 것을 말하며산줄기 중심 용맥을 말하며()이란 산줄기를 가리키며 꿈틀거리며 달려가는 형상으로 일명 심룡(尋龍)이라고도 한다.

용의 세력에 따라 생룡(生龍)・사룡(死龍)・강룡(强龍)・약룡(弱龍)・순룡(順龍)・역룡(逆龍)・진룡(眞龍)・퇴룡(退龍)・복룡(福龍)・병룡(病龍)・겁룡(劫龍)・살룡(殺龍등 12종류이며이 중에서 생룡・강룡・순룡・복룡・진룡 5개는 길하다고 보며 나머지 7개는 흉하다고 본다.

(41) 독봉사(獨峰砂)

산이 연결되지 않고 홀로 있는 산.

(42) 개혈(開穴)

혈을 연다는 뜻으로 보통은 시신을 안장하기 위해 땅을 파는 행위.

(43) 개법(蓋法)

장사지낼 때 얕게 파고 객토로써 봉분하는 것.

(44) 검극(劍戟)

칼과 창 모양의 산을 말하는데그 끝이 혈()을 향()하는 것을 흉사(凶砂)라 한다.

(45) 검척사(劍脊砂)

용맥이나 입수맥에 칼과 같이 빼쪽한 흉석(凶石)이 있는 것.

(46) 관쇄(關鎖)

용호(龍虎)가 좌우에서 서로 끝부분을 맞잡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감싸 안아 물이 빠지는 곳이 좁아진 상태를 말하는데 배 한 척이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관쇄가 되면 매우 길하다고 한다.

 

(47) 구곡수(九曲水)

혈의 앞쪽에서 마치 뱀이 지나가듯 곡곡으로 굽어서 지나가는 모양새이다돈이 남아돌고 의식이 풍부해진다일명 수성수(水星水)라 한다.

(48) 귀문(鬼門)

귀방(鬼方)이라고도 한다귀신이 드나든다 하여 매사에 꺼리는 방위로서동북방을 말한다.

(49) 금성수(金星水)

혈 앞쪽을 마치 요대를 허리에 찬 것처럼 둥글게 감싸 안으며 흐르는 물 줄기를 말한다물로써 가장 귀하며부귀하고 세상의 존경을 받고 충효현랑(忠孝賢郞)하며 의()로운 인물과 호남아(好男兒)가 난다고 함.

(50) 내룡(來龍)

혈로 내려오는 산줄기로 생기를 품고 있다입수가 있기 전까지의 산줄기.

(51) 기(氣)

()과 맥()이 흐르다가 보통 물을 만나면 멈춘다이때 멈춘 자리가 곧 지기(地氣)가 모여 있는 곳이다기에는 숨쉬 듯 활발하게 살아있는 생기(生氣)와 늙고 병든 죽은 기가 있다.

 

(52) 단산(斷山)

산줄기가 이어지지 않고 도로나 공사 등으로 끊어진 산.

(53) 독양(獨陽)

자연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이 탄생하는데산세에 비해 물과 바람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한 곳.

(54) 단청룡(單靑龍)

좌우로 산이 뻗지 않고 오로지 한 줄기 산이 그대로 뻗은 것이 못 쓰는 땅.

(55) 독음(獨陰)

자연은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이 탄생하는데물과 바람에 비해 산세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한 곳.

 

(56)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

뼈를 구성하는 원소는 생체 에너지와 독특한 진동파장을 가지는데 시신의 유골이 산화될 때 발하는 전자 파장이 동일한 기를 가진 후손과 서로 감응을 일으킴을 말함.

(57) 명당수(明堂水)

산이 흘러내려온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며일명 '역수(逆水)'라 한다즉 혈을 향해 몰려오는 물길.

(58) 봉침분금(縫針分金)

패철 9층을 말하며시신이 생기를 받을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시신의 좌향을 잡는데 사용한다.

(59) 부모(父母)

주산에서 아래로 1~2절 내려온 산줄기가 약간 도톰해지며 강한 기운을 맺은 곳이다형기론은 주산에서 혈까지 이어지는 내룡의 모양새 즉 부모→태()→식()→잉()→육()의 첫 번째이다.

 

(60) 비보풍수(裨補風水)

비보방살(裨補防殺)이라 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지리 사상예로 하회마을 만송정 숲이 비보 풍수로 겨울이면 세찬 북서풍을 막기 위한 숲이다.

(61) 사유팔간(四維八干)

패철 24방위 중에서 천간(天干)을 구성하는 요소들로 건(), (), (), ()은 사유(四維)이고(), (), (), (), (), (), (), ()은 팔간(八干)이다이것은 하늘의 기운으로 양()이고태양이고남자이고변화를 일으키는 주체.

(62) 삼합오행(三合五行)

이기론의 12포태법에서 각국의 생(), (), ()가 서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① 목국(木局)-해묘미()()()-3,8

② 화국(火局)-인오술()()()-2,7

③ 금국(金局)-사유축()()()-4,9

④ 수국(水局)-신자진()()()-1,6

 

(63) 생기(生氣)

우주와 자연을 변화시키고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생육하는 빛산소영양분온도 등이 복합된 기운.

(64) 상부(相符)

청룡과 백호가 혈장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뻗은 것을 가리킨다후손 간에 우애가 없고 다툼이 잦다고 함.

(65) 생토(生土)

산의 표면을 덮고 있는 흙을 걷어내면 돌도 흙도 아닌 상태가 나오는데보기에는 돌 같으나 만지면 흙처럼 곧게 바스러진다바로 생기가 응집되거나 흘러가는 통로로 홍황자윤(紅黃滋潤)해야 좋다.

(66) 선익(蟬翼)

혈장의 좌우에 있는 사()로써 그 모양새가 매미의 날개를 닮았다고 해서 생긴 말.

(67) 소조산(小祖山)

생기 에너지를 응결시키는 입수가 있기 직전에 생기가 집합 된 산으로 주산(主山혹은 현무라고도 부른다.

 

(68) 시호(諡號)

죽은 뒤에 망자의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追贈)하는 칭호.

(69) 수맥파(水脈波)

수맥이 흙 또는 암반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일종의 에너지 파장이다.

(70) 수성수(水星水)

혈의 앞쪽에서 마치 뱀이 지나가듯 곡곡으로 굽어서 지나가는 모양새이다돈이 남아돌고 의식이 풍부해진다일명 구곡수(九曲水)라고도 함.

(71) 식(息)

태산(胎山)이 아래로 흐르면서 생기가 잠시 묶여 있는 곳.

 

(72) 안대(案對)

무덤의 방향을 잡을 때 안산이나 조산의 봉우리와 무덤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좌향법.

(73) 양기(陽氣)

자연을 변화시키는 주체로 물과 바람을 가리킨다풍수에서는 물과 바람을 같은 개념으로 본다.

(74) 역수(逆水)

물길이 혈을 향해 들어오는 형상으로 풍수는 재물이 몰려온다고 해석하여 귀하게 본다.

(75) 외반봉침(外盤縫針)

패철 8층을 가리키며물의 파와 향을 잡는데 사용.

(76) 옥인(玉印)

묘 주위에 있는 암반건물 등을 말한다.

 

(77) 용상팔살(龍上八殺)

무덤 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을 가리키며 패철 1층에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78) 월수(越水)

청룡과 백호의 중간으로 건너편의 들판이나 물길이 바라다 보이는 것으로 그곳으로 바람이 불어옴으로 매우 흉하다월수에 달빛이 비추어 그 반사 빛이 묘에 이르면 후손이 큰 재앙을 당한다고 한다.

(79) 육신(六神)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서 적용하는 오방(五方)을 지키는 여섯 가지 신(). 남은 주작(朱雀), 북은 현무(玄武), 서는 백호(白虎), 동은 청룡(靑龍), 중앙은 구진(句陳)과 등사(螣蛇)이다.

(80) 육(育)

내룡의 생기가 응집된 혈을 뜻하며즉 부모 태(((()의 마지막 단계.

(81) 유혈(乳穴)

혈장의 핵심인 혈심을 향해 봉긋하게 도드라진 형상.

(82) 인합사(印盒砂)

혈 주변에 도장처럼 생긴 바위를 보통 일컬으며 귀인사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거나 혹은 옥쇄라 하여 임금이나 대통령이 태어난다고 해석한다인주와 같이 붉은 색을 띄면 더욱 좋다고 한다.

(83) 인반중침(人盤中針)

패철 6층을 가리키며 혈 주변의 사봉들이 혈에 대해 도움을 주는지 혹은 해를 주는 지를 보는 곳.

(84) 장막(帳幕)

산세의 흐름이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듯이 좌우로 겹겹으로 가지를 친 모양.

 

(85) 장풍법(藏風法)

혈의 생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주변 산봉우리가 혈장을 감싸준 곳을 찾는 풍수 한 방법.

(86) 정혈(定穴)

생기가 응집된 곳을 정하는 방법으로 형기론에서는 간룡법장풍법정혈법이 있고이기론에서는 득수법좌향법이 있다.

(87) 족장(族葬)

한 내룡에 여럿 명의 조상을 위에서 아래쪽으로 나란히 모시는 장법(葬法).

(88) 지룡(支龍)

행룡하는 대간룡은 중간 중간 수많은 산들을 기봉하고 여러 갈래로 산줄기를 뻗어내려간 산줄기로 중심 맥인 간룡을 제외하고 분맥한 나머지 용들을 지룡이라고 한다지룡에서는 중소 보국과 혈을 맺고간룡과 지룡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다.

 

(89) 중조산(中祖山)

태조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혈 쪽으로 내려오면서 다음으로 웅장함을 갖춘 산.

(90) 진응수(眞應水)

일명 선저수渚水)라 부르며 본래부터 혈장 앞에 넘치듯이 고여 있는 샘이나 연못을 가리킨다산세가 극히 왕성한 증거이며 맑고 수려하다면 재복(財福)이 크다고 한다.

(91) 천심십도(天心十道)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네 개의 산을 선으로 그었을 때 그 십자의 중앙에 혈이 있다고 본다유명 사찰의 경우가 이에 해당 하는 경우가 많다.

(92) 팔요풍(八曜風)

무덤 속으로 침입하는 바람을 말하며패철 2층에 8방위로 표시팔요풍이 불어올 경우 무덤에 흙이 마르거나광중에 시신이 해를 가할 수 있다나무를 심어 방풍을 하면 된다.

 

(93) 태조산(太祖山)

혈의 발원이 되며 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위용이 빼어난 산한국의 태조산은 백두산이다.

(94) 회도살(回到殺)

하관하는 순간을 보면 산 사람이 화를 당한다고 하며일부 에서는 호충살을 피하라고 하며하관하는 전후 3분만 보지 않는다는 살.

(95) 홍황자윤(紅黃滋潤)

진혈의 흙 색깔은 붉고 노란빛이 밝게 감돌면 좋다고 함.

 

산을 사물에 비유한 물형론

 

(1) 물형론의 개념

물형론(物形論)이란 산의 모양이나 혈장(무덤)이 형성된 주변 땅의 형세(形勢)를 사람이나 동물 혹은 여러 종류의 물체와 비유하여 그 모습을 구분한 것이다이렇게 산세와 지세의 독특한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풍수론적인 길흉(吉凶)을 따지는 것을 물형론・형국론(形局論)・물형규국론(物形規局論등으로 지칭한다우리가 흔히 듣는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호랑이가 숲에서 나오는 형국)구룡쟁주형(九龍爭珠形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다투는 형국)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물형론적 풍수지리 용어이다그러나 풍수지리를 이용하여 술수적 측면을 부각시켜 대중을 현혹하려는 몇몇 상업풍수가를 제외하고는 물형론이 마치 풍수지리의 전부인 양 과장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현대에 쏟아져 나오는 풍수지리 이론서나 풍수이론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 자칫 범하기 쉬운 잘못이 바로 이 물형론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조상의 유골이 편히 보존될 만한 땅을 찾자는 데서 출발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음택(陰宅풍수의 진의를 퇴색 변질시킨다는 지적이다따라서 중국 당나라 시대나 조선시대 실학자들에 의하여 쓰여진 고전(古典)의 지리서

(地理書)에는 이 물형론에 관하여 그 폐해를 지적하는 한편다른 풍수이론을 습득하는 가운데 이론의 일부로 연구할 것을 권하고 있다물형론은 보통 혈장(무덤), 주변의 국세(局勢), 즉 사신사(四神砂)나 각종 사격(砂格), 내룡(來龍)의 용세(龍勢), 주산(主山현무등에 적용되어 산세와 지세를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써 사람・동물・사물 유형의 정도로 구분하여 보기로 한다물론 물형(物形)의 3(三形사람・동물・사물 유형)을 산의 5형산(五形山), 즉 5(五星)으로 간단하게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예를 들어 사람에 비유한 물 형론적인 산세를 보면 5성 가운데 목성(木星목형산)과 화성(火星화형산)의 형국이 뚜렷한데이 경우의 정혈처(무덤자리)는 산을 사람으로 가정하였을 때 배꼽 부위나 음부라는 것이다또한 동물 가운데 날짐승(학이나 기러기 등)에 비유한 형국을 보면 금성(金星금형산)이 많다는 것이다이 경우 정혈 처는 날짐승 날개에 해당하는 부분이나 둥지라고 한다.

 

(2) 물형론의 종류

※형국론 ----------------------------------------------------------------------------------

산을 물체나 동물에 비유하여 그 물체의 기운이 가장 많이 받는 부분에 혈이 있다고 본다(), (), 사격(沙格), ()과 자연에 부합하는 원리로 보아야 한다.

 

1) 사람에 비유한 형국

 

가. 예쁜 여인에 비유한 형국

⦁옥녀단장형(玉女端粧形) : 예쁜 여인이 곱게 화장하는 듯한 형국.

⇦옥녀단장형

⦁옥녀세족형(玉女洗足形) : 예쁜 여인이 발을 씻는 듯한 형국.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 예쁜 여인이 긴 머리를 늘어뜨린 듯한 형국.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 예쁜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듯한 형국.

⦁옥녀격고형(玉女擊鼓形) : 예쁜 여인이 북을 치는 듯한 형국.

⦁옥녀무수형(玉女舞袖形) : 예쁜 여인이 춤을 출 때 보이는 고운 소맷자락과 같은

형국.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 : 예쁜 여인이 비단을 짜는 듯한 형국.

⦁옥녀등공형(玉女登空形) : 예쁜 여인이 하늘에 오르는 듯한 형국.

⦁옥녀개화형(玉女開花形) : 예쁜 여인이 활짝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드

러내는 듯한 형국혹은 옥녀가 자신의 음부(陰部)를 살짝 드러내고 수줍어하는

듯한 형국.

⦁미녀헌화형(美女獻花形) : 예쁜 여인이 꽃을 꺾어 바치는 형국 또는 자신의 다리

를 살짝 벌리는 듯한 형국.

⦁천녀등천형(天女登天形) : 선녀가 하늘에 올라가는 듯한 형국.

⦁삼녀동좌형(三女同坐形) : 시어머니며느리딸이 함께 앉은 듯한 형국.

⦁아미명수형(蛾眉明秀形) : 아름다운 여인의 반달형 눈썹과 같은 형국.

 

나. 신선에 비유한 형국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 : 다섯 신선이 바둑판에 둘러앉아 바둑을 두는 듯한 형국.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 신선이 책을 읽는 듯한 형국.

⦁선인격고형(仙人擊鼓形) : 신선이 북을 두드리는 듯한 형국.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 : 신선이 춤을 출 때 드러나는 소매 자락과 같은 형국.

⦁선인대좌형(仙人對坐形) : 신선이 단정하게 앉은 듯한 형국.

⦁선인앙장형(仙人仰掌形) : 신선이 손바닥을 바라보는 듯한 형국.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 : 두 명의 신선이 높게 솟아오른 달을 우러러보는 듯한

형국.

⦁선인과마형(仙人跨馬形) : 신선이 말에 걸터앉은 듯한 형국.

⦁무선형(舞仙形) : 춤을 추고 있는 신선과 유사한 형국.

 

다. 용감한 장군에 비유한 유형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 : 여러 장군이 서로 작전을 의논하는 듯한 형국.

장군대좌형

⦁9장군무검형(將軍武劍形) : 장군이 적진에서 용감하게 칼을 휘두르는 듯한 형국.

⦁장군출진형(將軍出陣形) : 장군이 적진으로 나아가는 듯한 형국.

⦁장군전마형(將軍戰馬形) : 장군이 지친 말을 쉬게 하고 새로운 말로 갈아타는 듯

한 형국.

⦁장군패검형(將軍佩劍形) : 장군이 칼을 차고 있는 듯한 형국.

장군패검형

⦁장군만궁형(將軍彎弓形) : 장군이 활시위를 당기는 듯한 형국.

⦁장군전기형(將軍展旗形) : 장군이 깃발을 펼쳐 나열하고 진을 치는 듯한 형국.

⦁장군격고월적형(將軍擊鼓越敵形) : 장군이 북을 두드리며 적을 추격하는 듯한 형국.

라. 승려와 어부에 비유한 유형

⦁호승배불형(胡僧拜佛形) : 나이를 먹은 승려가 예불을 드리는 듯한 형국.

⦁유승예불형(遊僧禮佛形) : 떠돌이 승려가 예불을 올리는 듯한 형국.

⦁어옹철망형(漁翁鐵網形) : 늙은 어부가 그물을 거둬들이는 듯한 형국.

⦁어부설망형(漁父設網形) : 어부가 그물을 치는 듯한 형국.

⦁어옹수조형(漁翁垂釣形) : 늙은 어부가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는 듯한 형국.

 

2) 동물에 비유한 형국

 

가. 용이나 뱀에 비유한 유형

⦁갈룡심수형(渴龍尋水形) : 목마른 용이 물을 찾아다니는 듯한 형국.

⦁비룡함주형(飛龍含珠形) : 용이 구슬을 머금고 날아오르는 듯한 형국.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 용이 처음 떠났던 곳을 되돌아오는 듯한 형국.

회룡고조형

⦁잠룡입수형(潛龍入首形) : 속에 숨은 용이 머리를 드러내고 나타난 형국.

⦁갈룡고수형(渴龍苦水形) : 목마른 용이 물을 기다리는 듯한 형국.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 :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갖고 다투는 형국.

⦁용마음수형(龍馬飮水形) : 용마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

⦁와룡형(臥龍形) : 용이 길게 드러누운 듯한 형국.

⦁회룡입수형(回龍入首形) : 용이 되돌아보면서 머리를 드러낸 듯한 형국.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 용이 날아오르며 하늘 높이 솟는 듯한 형국.

⦁여룡롱주형(女龍弄珠形) : 여룡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듯한 형국.

⦁황룡도강형(黃龍渡江形) : 황금빛을 발하며 용이 강을 건너는 듯한 형국.

황룡도강형

⦁황룡출수형(黃龍出水形) : 황룡이 물 밖으로 나오는 듯한 형국.

⦁회룡은산형(回龍隱山形) : 용이 산에 돌아와 숨는 듯한 형국.

⦁초사토설형(草蛇吐舌形) : 뱀이 수풀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듯한 형국.

⦁생사청와형(生蛇聽蛙形) : 큰 뱀이 개구리를 뒤쫓아 가는 듯한 형국.

⦁사두형(巳頭形) : 뱀의 머리와 흡사한 형국.

⦁용사취회형(龍蛇翠會形) : 용과 뱀이 서로 만나 화합을 여는 듯한 형국.

 

나. 거북이에 비유한 유형

⦁금구음수형(金龜飮水形) : 금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

금구음수형

⦁금구몰니형(金龜沒泥形) : 금 거북이가 흙 속에 묻힌 듯한 형국.

⦁영구하산형(靈龜下山形) : 영험한 거북이가 산을 내려오는 듯한 형국.

⦁부해금구형(浮海金龜形) : 금 거북이가 바닷물 위로 떠오르는 듯한 형국.

⦁금구입수형(金龜入首形) : 금 거북이가 불쑥 머리를 내미는 듯한 형국.

⦁구미형(龜尾形) : 거북이 꼬리와 같은 형국.

⦁금구하전형(金龜下田形) : 금 거북이가 밭을 내려오는 듯한 형국.

 

다. 호랑이에 비유한 유형

⦁맹호출림형(猛虎出林形) : 호랑이가 숲에 나와 사냥감을 쫓는 듯한 형국.

⦁맹호하산형(猛虎下山形) : 호랑이가 산을 내려오는 듯한 형국.

⦁맹호하전형(猛虎下田形) : 맹호가 밭으로 내려오는 듯한 형국.

⦁노호하산형(老虎下山形) : 늙은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오는 듯한 형국.

⦁갈호음수형(渴虎飮水形) : 목마른 호랑이가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

⦁복호형(伏虎形) : 호랑이가 엎드려 먹이를 노리거나 기다리는 듯한 형국.

 

라. 말에 비유한 유형

⦁옥마형(玉馬形) : 아주 잘 생긴 말과 닮은 형국.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 : 목이 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

갈마음수형

⦁천마시풍형(天馬嘶風形) : 천마가 울부짖으며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듯한 형국.

⦁주마탈안형(走馬脫鞍形) : 말이 안장을 벗고 쉬는 듯한 형국.

주마탈안형

 

마. 소나 토끼 등에 비유한 형국

⦁와우형(臥牛形) : 소가 한가롭게 누워 먹이를 되새김질하는 듯한 형국.

와우형

⦁우면형(牛眠形) : 소가 잠자는 듯한 형국.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 : 토끼가 달을 우러러보는 듯한 형국.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 : 늙은 쥐가 먹이를 찾아서 밭으로 내려오는 듯한 형국.

⦁복구형(伏狗形) : 개가 먹이를 노리면서 엎드린 듯한 형국.

⦁지주포란형(蜘蛛抱卵形) : 거미가 다리로 알을 품는 듯한 형국.

지주포란형

⦁갈록음수형(渴鹿飮水形) : 목마른 사슴이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

 

바. 봉황에 비유한 형국

⦁비봉쇄익형(飛鳳刷翼形) : 봉황이 날개깃을 쓰다듬는 듯한 형국.

⦁비봉포란형(飛鳳抱卵形) : 봉황이 알을 품고 나는 듯한 형국.

⦁봉소포란형(鳳巢抱卵形) : 봉황이 둥지에서 알을 품는 듯한 형국.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 봉황이 둥지로 돌아오는 듯한 형국.

⦁단봉전서형(丹鳳傳書形) : 붉은 빛의 봉황이 편지를 물어오는 듯한 형국.

⦁단봉어서형(丹鳳御書形) : 붉은 빛이 감도는 봉창이 임금님의 서신을 물고 가는

듯한 형국.

 

사. 새에 비유한 유형

⦁앵소유지형(鶯巢柳枝形) : 꾀꼬리가 버들가지에 둥지를 튼 듯한 형국.

⦁앵소포란형(鶯巢抱卵形) : 꾀꼬리가 둥지에서 알을 품는 형국.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 닭이 알을 품는 듯한 형국.

⦁금계함적형(金鷄含跡形) : 닭이 한쪽 발을 감추고 서 있는 듯한 형국.

⦁금계욕수형(金鷄浴水形) : 닭이 목욕을 하는 듯한 형국.

⦁선학하전형(仙鶴下田形) : 학이 밭으로 내려오는 듯한 형국.

⦁연소형(燕巢形) : 제비집과 닮은 형국.

연소형

⦁평사하안형(平沙下雁形) : 개펄에 기러기가 사뿐히 내려앉은 듯한 형국.

평사하안형

⦁비안도잠형(飛雁度岑形) : 기러기가 날아서 산봉우리를 넘는 듯한 형국.

⦁청학포란형(靑鶴抱卵形) : 청학이 둥지에서 알을 품는 듯한 형국.

 

3) 사물에 비유한 형국

 

가. 연꽃에 비유한 유형

⦁연화출수형(蓮花出水形) : 연꽃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듯한 형국.

⦁연화도수형(蓮花滔水形) : 연꽃이 수면 위로 넘쳐흐르는 듯한 형국.

⦁5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 연꽃이 수면 위에 떠 있는 형국.

연화부수형

 

나. 달에 비유한 유형

⦁반월형(半月形) : 반달처럼 생긴 형국.

⦁만월형(彎月形) : 보름달처럼 생긴 형국.

⦁초월형(初月形) : 초승달처럼 생긴 형국.

⦁완사명월형(浣紗明月形) : 비단처럼 밝고 고운 달의 형국.

 

다. 여러 가지 꽃에 비유한 유형

⦁모란반개형(牡丹半開形) : 모란꽃이 반쯤 핀 듯한 형국.

모란반개형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 매화꽃이 땅에 떨어진 듯한 형국.

매화낙지형

⦁작약반개형(芍藥半開形) : 작약꽃이 반쯤 핀 듯한 형국.

⦁이화낙지형(梨花落地形) : 배꽃이 땅에 떨어진 듯한 형국.

⦁도화낙지형(桃花落地形) : 복사꽃이 땅에 떨어진 듯한 형국.

⦁도화만개형(桃花滿開形) : 복사꽃이 활짝 핀 듯한 형국.

 

라. 기타 물체에 비유한 유형

⦁괘등형(掛燈形) : 등불을 매달아놓은 듯한 형국.

⦁옥적형(玉笛形) : 옥으로 만든 피리의 형국.

⦁풍취나대형(風吹羅帶形) : 비단같이 아름다운 대를 찬 듯한 형국.

⦁비아부벽형(飛蛾附壁形) : 누에나방이 벽에 붙은 듯한 형국.

⦁잠두형(蠶頭形) : 누에의 머리와 닳은 형국.

⦁행주형(行舟形) : 배가 떠나는 듯한 형국.

⦁보검출갑형(寶劍出匣形) : 보검을 칼집에서 꺼내는 듯한 형국.

⦁금반옥대형(今般玉臺形) : 금 쟁반처럼 생긴 누각과 같은 형국.

⦁금차낙지형(金𨥁落地形) : 금비녀가 땅에 떨어진 듯한 형국.

⦁옥병저수형(玉甁貯水形) : 옥으로 만든 화병에 물을 채워둔 듯한 형국.

⦁괘벽금차형(掛劈金𨥁形) : 금비녀를 벽에 걸어놓은 듯한 형국.

⦁복종형(伏鍾形) : 종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형국.

⦁사중옥립형(沙中玉笠形) : 모래 가운데 옥으로 된 삿갓을 쓴 듯한 형국.

 

 문성귀인(文星貴人): 목형산 아래 금형산 아미사(蛾眉砂) 있는 형상.

 문필봉(文筆峰): () 또는 죽순(竹筍) 처럼 끝이 뾰족한 .

 반월형(半月形): 반달과 같이 생긴 .

 복두(): 토형산이 가운데는 높고 양쪽은 낮아 복두() 같이 생긴 .

 부봉(富峰): 거북이 , 엎어놓은 , 노적가리처럼 생긴 .

 삼공필(三公筆): 토형산 위에 가운데 봉우리는 높고  봉우리는 낮은 형상.

 상원필(元筆): 토형산  중앙에 목형산이 솟아 있는 형상.

 쌍록귀인(貴人): 크기와 높이가 같은 목형산  개가 우뚝 솟아 있는 형상.

 아미형(蛾眉形): 초승달에 가까운 형상으로 미인의 눈썹처럼 생긴 .

 옥당귀인(玉堂貴人): 화형산 아래에 목형산이 있는 형상.

 옥대사(玉帶砂): 목형산이 옆으로 누워 둥근 고리처럼 생긴 .

 일산형(日傘形):  모양이 사방을 압도할  있는 웅장하면서 우산처럼 생긴 .

 일자문성(一字文星):  정상이 일자(一字) 모양으로 생긴 .

 재상필(宰相筆): 토형산  중앙에 목형산이 한쪽에 솟아 있는 형상.

 제좌(帝座):  개의 목형산이 가운데 봉우리는 높고, 양쪽은 낮은 형상.

 천마사(天馬砂): 쌍봉산이 한쪽은 높고, 한쪽은 조금 낮아 말의 등처럼 생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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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제 순서

시산제 선포 : 집사 선포
의례 : 순국선열 선산우 묵념
산악인 선서 : 산악대장,회원 거수 맹세
강신령 : 산악대장 제전,양초 향,첫 잔 삼배 묵념,삼분쇄주,초혼문 낭독
참신령 : 모두 삼배 묵념
초헌 : 산악대장 첫 헌작 삼배 묵념
독축 : 산악부대장 축문 낭독
아헌 : 전임 산악대장 둘째 헌작 삼배 묵념
종헌 : 최고 선배 셋째 헌작 삼배 묵념
헌작 : 회원 헌작 삼배 묵념
소지 : 축문 소지 승화
개밥 : 제물 잡신 분배
폐회 : 집사 선포
음복 : 철상 
 

산악인 선서

1.산악인은,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1.목적에 이르기까지 정렬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절망도 포기도 없다.
1.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1.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사랑에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서기 2024년 3월 16일
산내들 산악대장
 

초혼문

서기 2024년 갑진년(甲辰年) 3월 16일
산내들 회원 모두가
지금까지 무사하게 산행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산신령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올 한 해에도 무사히 산행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사 하고
부족한 정성이지만 성심을 다하여
조촐한 제물을 마련하여
맑고 청정한 관악산 자락에서
산신령님께 바치오니
산신령님께서는 인간 세상에 내려오셔서
임재(臨在)하여 주시옵소서
 

축문

유~세~차~ 단기 4357년 갑진년(甲辰年) 음력 2월 7일
오늘 관악산에서 저희 산내들 일동은
이 땅 모든 산하를 굽어보시오며
모든 생명을 지켜주시옵는
산~신령님께 고(告)~하옵나이다.
산을 배우고 산을 닮으며
그 속에서 하나가 되고자 모인 우리가
산을 오르옵나니,
그 산행 하나 하나마다
산과 하나 되는 기쁨으로 충만하고,
아무 낙오자 없이 안전 산행하게 해 주시옵는
산~신령님!!!
그 자애로운 보살핌을 어찌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으오리오.
이에 저희가 감사 시산제를 올리는 바이옵나이다.
이 아름다움 가득찬 산과 골짜기를 걸을 때마다,
저희 발걸음 발걸음을 조용히 지켜보시오며
오직 무사 안전 산행이 되도록,
보살펴주시옵는 산~신령님이시여!!
아무쪼록 바라옵건데,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저희 두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활력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함부로 더럽히거나
파괴하지 않을 것이오며,추한 것은 덮어주고
아름다운 것은 그윽한 마음으로 즐길 것이오며,
그러한 산행을 하는
산을 닮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사옵나이다.
거듭 바라옵건대,갑진년 한 해 서로 화합과 사랑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고,
무사 산행이 되도록 엎드려 고(告)~하옵나니,
산~신령님이시여!
오늘 조그만 정성으로 저희들이 준비한 음식을
어여삐 여겨 즐거이 받아 거둬 주시어,
올 한 해 무사 산행길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이 한 잔 술 음향하여 주시옵소서.
2024년 3월 16일.산내들 일동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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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로부터 반갱(飯羹)[밥(메), 국]을 놓고, 적탕채과(炙湯菜果)[적, 탕, 채소, 과일]의 순서로 진설한다. 
- 천산양수(天産陽數) : 하늘, 바다에서 나는 소, 꿩, 조기 는 양이라 홀수로 진설한다.
- 지산음수(地産陰數) : 땅에서 얻는 과일, 채소 는 음이라 짝수로 진설한다. . 
- 고비합설(考妣合設) : 내외분일 경우 남자조상과 여자 조상은 함께 차린다.

첫줄에 수저, 밥, 국(떡국), 잔을 놓는다.
- 고서비동(考西妣東) : 고위(男)의 밥. 잔. 국은 왼쪽(西), 비위(女)는 오른쪽(東)으로 가게 한다.
- 시접거중(匙楪居中) : 수저를 담은 그릇은 신위의 앞 중앙에 놓는다.
- 접동잔서(楪東盞西) : 접시는 동쪽에, 잔은 서쪽에 진설한다.
- 잔서초동(盞西醋東) : 술잔은 서쪽, 식초는 동쪽에 놓는다.
- 반서갱동(飯西羹東) : 밥(메)는 서쪽이고 국(羹)은 동쪽이다.(산 사람과 반대)

둘째줄에는 국수, 전, 육적(肉炙, 고기), 소적(素炙, 두부), 어적(魚炙,생선), 시루떡을 놓는다.
- 적접거중(炙楪居中) : 구이 적(炙)은 중앙에 놓는다.
- 어동육서(魚東肉西) :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으로 가게 한다.
- 두동미서(頭東尾西) : 머리를 동쪽에 향하고, 꼬리는 서쪽을 향한다.
- 배상복하(背上腹下) : 닭구이나 생선포는 등이 위로 향한다.
- 배남복북(背南腹北) : 생선 등은 양이라 남(南) 사람 쪽, 배는 음이라 북(北) 지방(사진 )쪽을 향한다. 
- 면서병동(麵西餠東) : 국수는 서쪽, 떡은 동쪽에 놓는다.

셋째줄에는 육탕(肉湯, 육류),소탕(素湯, 두부, 채소류),어탕(魚湯, 어패류) 등 세 종류를 놓는다.  

네째줄에는 포,나물,간장,나박김치,식혜 순으로 올린다.
- 숙서생동(熟西生東) : 익힌 나물은 서쪽이고, 생김치는 동쪽에 놓는다.
- 건좌습우(乾左濕右) : 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에 놓는다.
- 좌포우혜(左胞右醯) : 좌측에는 포, 우측에는 식혜를 놓는다. 
- 서포동해·혜(西脯東醢·醯) : 포는 서쪽이고. 생선젓과 식혜는 동쪽에 놓는다.

다섯째줄에는 과일이 올라간다.
- 조율이시(棗栗梨枾) :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곶감 다음에 호두 혹은 망과류(넝쿨과일), 끝으로 조과류(다식, 산자, 약과)를 진설한다. 조율시이(棗栗枾梨)로 놓을 수도 있다.
-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색의 과실은 동쪽에 놓고, 흰색의 과실은 서쪽에 놓는다. 
- 조동율서(棗東栗西) : 대추는 동쪽이고 밤은 서쪽에 놓기도 한다. 

- 합동로서(盒東爐西) : 동쪽에 향합을, 서쪽에 향로를 놓는다.
- 공수법(拱手法) : 공경을 표한다는 뜻으로 절을 할 때 손의 모양을 말한다.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 위로한다. 이는 양을 높이는 이치이다. 여자는 이의 반대로 하니 음을 높이는 이치이다.

■ 진설과 제수에 담긴 의미들

1열은 제주와 가장 멀리 있는 곳을 삼는다. 1열에는 메(밥)와 갱(국)을 놓는다. 추석엔 메(밥) 대신 송편을 올린다. 송편을 올리는 이유는 송편이 추석의 상징적 의미인 둥근 달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때 갱(국)은 동쪽(오른쪽)에, 메는 서쪽(왼쪽)에 놓는다. 송편과 함께 밥도 올리는 경우, 반서갱동(飯西羹東)이라 하여 밥과 술잔은 왼쪽, 국과 송편은 오른쪽에 놓는다. 이는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2열에는 세 가지의 적과 전을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맞춰 어류는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므로 적과 전을 합해 홀수로 놓는다. 

3열에 올라가는 탕은 어탕, 육탕, 계탕을 모두 올리거나 한 가지만을 놓는다. 탕도 하늘로부터 얻어진 음식이라 홀수로 올려놓는다. 탕은 건더기만을 떠서 놓는데 여기에는 조상들이 먹기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4열에는 삼색 나물과 식혜, 김치, 포 등이 올라간다. 이때 좌포우혜(左脯右醯)를 원칙으로 삼는다. 북어와 대구, 오징어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에 둔다.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북어는 우리나라 동해 바다의 대표적인 어물이자 머리도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어 알과 같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유래가 있다.
삼색 나물의 삼색은 검은색과 흰색, 푸른색의 세 가지 나물로 역시 귀함을 뜻하는 양(陽)의 수인 홀수이다. 흰색은 뿌리나물이라 하여 도라지나 무나물을 쓰고, 검은색은 줄기나물로 고사리를 쓴다. 푸른색은 잎나물로 시금치나 미나리를 쓴다. 뿌리는 조상을, 줄기는 부모님을, 잎은 나를 상징한다.

마지막 5열, 즉 제일 앞줄에는 과일과 약과, 강정을 둔다. 과일은 땅에서 난 것이므로 짝수 종류를 놓고, 한 제기에 올리는 과일의 양은 귀함을 뜻해 홀수로 놓는다. 이때 조율이시(棗栗梨枾)와 홍동백서(紅東白西)를 지킨다. 즉 왼쪽부터 대추와 밤, 배, 곶감, 약과와 강정 순으로 차리고 사과와 같은 붉은 과일은 동쪽, 배 등 흰 과일은 서쪽에 둔다.

좌포우혜의 경우 포(脯, 말린 것) 종류의 음식보다는 혜(醯, 소금에 절인 젓갈류) 종류의 음식이 좋고, 어동육서 또한 육(肉, 육류)의 음식보다는 어(魚, 생선류)의 음식이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두동미서는 미(尾, 꼬리)의 음식보다는 두(頭, 머리)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율이시의 경우 과일은 신위 쪽에서 가장 먼 줄에 있으니 약처럼 가끔씩 먹을 일이로되 뼈에 좋은 대추, 머리에 좋은 밤, 배에 좋은 배, 피부에 좋은 감의 순서로 좋은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홍동백서는 백(白, 흰색) 종류의 음식보다는 홍(紅, 붉은색)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들을 함께 먹어야 몸에 좋다는 것을 자손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다.

홍동백서(紅東白西)의경우, 밤은 서쪽의 나무(栗)라고 쓰며, 두렵다(慄)는 뜻이 있고, 신주(神主)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음(陰), 즉 서(西)쪽에 해당되고, 대추의 붉은 색은 하늘 즉 양(陽)을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한다는 뜻이므로 동서남북(東西南北)중 양(陽)방은 東쪽이고, 또 東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의미와 합치해 대 추는 東쪽에 해당되며,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가 놓인 東쪽에서부터 붉은색의 과실을 놓고, 흰밤이 놓인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

예법상식- 보학개론(譜學槪論)-족보용어(族譜用語)

함(銜)과 휘(諱)라고 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높여서 함(銜)이나 명함(名銜)이라 하고, 더 높여서 존함(尊銜)이라고도 한다. 반면 돌아가신 분의 이름은 휘(諱)라 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한다. 그리고 사손(嗣孫)과 사손(祀孫)은 사손(嗣孫)이란 한 집안의 종사(宗嗣), 즉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을 말하며, 사손(祀孫)이란 봉사손(奉祀孫)의 줄임말로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어서 출계와 계자는 후사(後嗣)란 세계를 이을 자손을 말한다. 후사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할 때에는 무후(无后)라고 쓰며 무후(无后)는 무후(無後)와 같은 의미이다. 무후가(无后家)로 하지 않고 양자를 맞아 세계를 이을 때는 계자(系子)라고 써서 적자와 구별하고. 계자의 경우는 세표에 생부(生父)를 기록한다. 또 생가의 세표에는 출계(出系)라고 쓰고 양자를 들일 때는 되도록 가까운 혈족 중에서 입양한다. 또 호적이 없는 자를 입적시켜 세계를 잇게 하는 경우는 부자(附子)라고 쓴다. 옛날에는 적자 이외의 자로 세계를 잇고자 할 때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얻어야 했으며 파양(罷養)을 하고자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생(生) 졸(卒)은 생(生)은 출생을, 졸(卒)은 사망을 말하는 것인데, 70세 이상에 사망(死亡)하면 수(壽)○○라 하고, 70세 미만에 사망하면 향년(享年)○○라 하며, 20세 미만에 사망하면 요절(夭折), 또는 조요(早夭)라고 표시한다.  실(室)과 배(配)는 배우자를 말하는 것인데, 실(室)은 생존한 분, 배(配)는 작고(作故)한 분을 구분하는 것인데, 생졸(生卒) 구분 없이 배(配)로 통용하는 문중(門中)도 있다.  묘소(墓所)란 분묘의 소재지를 말하는 것으로 족보에는 '묘(墓)'자만을 기록하고, 좌향(坐向 : 묘가 위치하고 있는 방향, 방위)과 석물(石物), 또는 합장 여부를 기록한다. 묘소의 방향이 자좌(子坐)로 되어 있으면 고인의 머리 쪽이 정북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으로, 우리가 보는 묘지의 방향은 정남향이 된다. 좌우(左右)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묘를 바라보는 쪽에서는 정반대가 되므로 좌는 동(東)쪽, 우는 서(西)쪽으로 보면 된다. 합봉(合封), 합묘(合墓)는 부부를 한 봉분에 합장했다는 말이고, 쌍봉(雙封)은 같은 묘소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두 봉분을 나란히 만들었다는 것인데 합장(合葬)을 할 경우는 남편은 오른쪽, 부인은 왼쪽에 묻는데 이는 사자(死者)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묘를 바라보는 사람은 정반대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 때문에 화장을 많이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의 영향으로 중(僧)을 제외하고는 토장(土葬)을 하여 분묘가 발달하였다.
 분묘의 형태는 시대와 나라, 지방, 문화생활, 계급에 따라 그 형식을 달리 하나 대개의 경우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에 의거하여 설치한다. 산을 뒤로 두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며, 좌우의 청룡(靑龍)과 백호(白虎)가 앞의 주산(主山)보다 약간 높게 위치한 곳에 앞은 몇 층의 단상(壇狀)을 만들고 주위에 호석(護石)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고 사대부(士大夫)의 무덤 주위에는 망주(望柱 : 무덤 앞에 세우는 한쌍의 돌기둥)를 세우고 석인(石人 : 돌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배치하였으며, 분묘 앞에는 상석(床石 : 제물을 놓기 위해 돌로 만든 상)과 묘표(墓表)를 두고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 묘갈(墓碣)을 세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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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경주최씨2017. 2. 14. 23:55

慶州崔氏家訓
경주최씨가훈
 
願言利門 不使損遺體 身榮塵易染 心垢難洗 

원언경리문 불사손유체 신영진이염 심구난세


骨肉之間 愼勿責善 宗族之間 不可之怨怒 惟以親愛敦睦爲主.  

골육지간 신물책선 종족지간 불가지원노 유이친애돈목위주 


惟以責善 喜聞過爲心 

유이책선 희문과위심 

父母之得美味 人子所喜也 
부모지득미미 인자소희야 


凡人家父祖儀範 無一遵守 亦可謂其家之人乎 

범인가부조의범 무일준수 역가위기가지인호 

雖讀書家子侄 無小學之行 可見其徒尙虛文也     
수독서가자질 무소학지행 가견기도상허문야   

  
於 東文選

어 동문선


바라건대 이욕의 문을 막아, 부모께 받은 몸 상하게 하지 말라.

몸이 영화로우면 티끌에 물들기 쉽고, 마음의 때는 물로 씻기 어렵다.

부모형제 간에는 삼가 착한 일만 하라고 조르지 말고, 종족 간에는 원한이나 노여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고, 오직 사랑하고 화목함을 으뜸으로 하라.

친구들과 사귀어 놀때에는 오직 착한 일을 하도록 권장하고, 나의 잘못한 일의 충고를 즐겨 듣고 이를 마음속에 명심할 것이다.

부모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얻는 것은 자식으로서 기쁜 일이다.

한집에서 조상들이 마련한 예의범절을 한결같이 지키지 않는 것도 또한 그 집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책을 읽는 집안의 자손이라도 소학에서 공부한 행실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오히려 글을 배운 것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동문선에서.


지은이: 최 치 원 (崔 致 遠

857년 신라 헌안왕1년 生 학자. 경주 최씨의 시조.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869년 당나라에 유학하여 874년 과거에 급제하고 선주표수현위(宣州漂水顯尉)가 되고, 승무랑시어사내공봉(承務郞侍御史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御袋)를 하사 받았다. 879년 황소(黃巢)의 난에 제도해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서기(書記)의 책임을 맡았다. 당시의 표장, 서계, 격문은 모두 그의 손으로 지어졌으며 특히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명문으로 알려졌다. 885년에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감이 되었으나 국정의 문란함을 통탄 외직을 청원하여 대산, 천령, 부성등의 태수를 지냈다. 893년 견당사에 임명되었으나 도둑이 횡행하여 가지 못하고 이듬해 시무 십여조를 상소하여 시행케 하고 아찬이 되었다. 그후 난세를 비관하여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 들어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글씨를 잘 썼다. 그의 난랑비서문은 신라시대의 화랑도를 해설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행, 문창후에 추봉 되었다. 조선시대 태인의 무성서원, 경주의 서악서원, 함양의 백연서원, 영평의 고운영당 등에 제향. 글씨로는 숭복사비문, 진감국사비문, 지증대사적조탑비문, 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문, 사산비문 등이 있고, 저서로는 계원필경, 중산복궤집, 석순응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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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경주최씨2017. 2. 8. 17:27

신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기원전 57, 천상(天上)에서 강림한 박혁거세가 건국했다고 한다. 이에 의하면 혁거세는 지금의 경주지역 산곡간(山谷間) 할거하던 사로 6(斯盧六村) 우두머리들인 6촌장(村長)들에게 옹립되어 신라를 세우고 초대왕이 되었다.

혁거세를 추대한 6촌과 촌장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신라 건국신화 부분에 실명이 모두 공개되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첫째가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고, 둘째가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 넷째가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가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다.

이들 6촌은 나중에 () 바뀌게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건국기에서는 사로 6촌이 발전한 6부를 '진한 6'(辰韓六部) 부르고 있다. 6 이름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 전하는데,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은 일치한다

기록에 의하면 돌산 고허촌은 촌장이 소벌(蘇伐) 혹은 소벌도리(蘇伐都利)였다. 6촌장 중에서도 소벌도리는 혁거세 옹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어느 양산 기슭을 바라보다가 나정(蘿井) 옆에서 아이를 발견하니 그가 바로 혁거세였다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에 더해 소벌도리 또한 형산(兄山)으로 강림했다고 덧붙인다. 형산이란 서형산(西兄山), 선도산(仙桃山)이라고도 부르는 산으로, 중국 황실의 딸인 혁거세 어머니가 중국을 떠나 정착한 곳이며, 김유신의 큰누이 동생 보희(寶姬) 방뇨하는 꿈을 장소로도 유명하다

기록들이 비록 신화 혹은 전설이라는 성격을 벗어버리기 힘들지만 돌산 고허촌이란 곳이 사로 6 중에서도 사실상 신라의 탄생지라는 흔적을 가장 농후하게 남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돌산 고허촌은 나중에 () 바뀌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는데, 사량부(沙梁部) 그것이다. 사량부를 무대로 저명한 족적을 남긴 신라사의 인물로는 신라말기의 대학자 최치원이 있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는 김유신 집안이 대대로 정착해 생활한 곳도 이곳이다

김유신은 6 어느 출신인지 기록이 없으나, 그의 조부인 김무력(金武力) 사량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신라 진흥왕 시대 몇몇 금석문에 보이는 데다, 무력의 고손자이자, 김유신의 조카인 김반굴(金盤屈) 또한 사량부 출신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사량부 출신임이 확실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사량부는 고려건국 직후에는 남산부(南山部) 되었다. , 사량부는 돌산 고허촌을 모태로 해서 사로 6 하나가 되었다가 고려시대에는 남산부로 바뀐 셈이 된다.

사량부, 나아가 돌산 고허촌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논란이 없지 않으나, 최근 1-4세기 대규모 고분군이 발견된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 일대를 포함했다는 데는 학계에서 이견이 거의 없다

신라가 공식적으로 건국되기 경주시 지역의 6 고허촌(高墟村) 촌장이었다. 훗날 신라 6 사량부의 시조가 됐다. 이름의 '소벌' 신라의 이름인 서라벌과 같은 어원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서는 6 촌장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학계에서는 앞서 멸망한 고조선 유민 세력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서는 소벌도리가 나정에서 혁거세의 알을 처음 발견하고, 10살까지 집에서 키우며 나중에 왕으로 추대할 때도 주도적 역할을 한다. 설화적 윤색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혁거세 집단이 즉위하고 신라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데서도 6 가장 공을 세운 후원세력의 우두머리로 있다.

"어느 고허촌장 소벌공(혹은 소벌도리)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곁의 사이에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래서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 알이 한개 있어 깨뜨려보니 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은 아이를 데리고 와서 길렀는데, 10여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다. 6 사람들은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이라고 하였는데, 혁거세가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 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하였다."삼국사기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아들 최대벌리(崔大伐利) 혈통으로 소벌공(蘇伐公) 소벌도리(蘇伐都利)로부터 24세손(世孫) 최치원(崔致遠)이 경주 최씨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최성의 원조 소벌도리(崔姓 元祖 蘇伐都利)

최씨의 득성(得姓)을 한 원시조(元始祖)이시며, 신라 개국공신으로 양자(養子) 혁거세왕(赫居世王)과 더불어 신라(新羅) 천년사직(千年社稷)을 이루며 오늘날 찬란한 문화와 화랑정신을 만대에 계승 발전시키신 분이다.

 

년원(淵源)

 

진한의 소벌도리와 최씨(辰韓 蘇伐都利 崔氏)

최씨는 우리 겨레 가운데서도 가장 역사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역사상 숱한 명신 열사, 학자, 문인을 배출한 라조(羅朝) 이래의 전통 있는 명문으로 손꼽히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다.

우리 동방에서 최씨 내력을 알고자 하면 먼저 소벌공부터 알아야 한다. 소벌공은 본명이 소벌도리이니 그 당시 진한의 방언으로 지은 것이요, 후에 역사기록에서 소벌공이라 명칭하였지만 소벌은 성씨가 아니요, 부르기 쉬운 약칭인 것이다 그 당시 소벌도리는 한갓 이름 뿐인 것이다 그러나 지위를 보아서 후세인이 공()자를 붙여 존칭한 것이요 당시 제도로 보아 이름자만 호칭한 것이다 소벌공은 지금으로부터 약 2천백 여년 전 사람으로 삼국유사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듯이 기록이 있으나 사기(삼국사기 동국통감)등 정사에는 그러한 천강설(天降設)은 없고, 다만 진한의 고허촌장 이라고 말하여 어디로부터 왔는지 생래(生來)는 불분명하므로 그를 연구함에는 정사(正史)를 따라 조선의 유민사(遺民史)에서 진한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소벌공은 본래 진한 사람으로 신라를 창건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 삼국사기, 신라본기 동국통감에서 본 그의 사기는 다음과 같다.

 

6촌장과 진한(六村長 辰韓)

기원전 57년경 고조선의 북부여 유민들이 동해빈의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락을 이르고 있었는데 첫째 마을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둘째 마을은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셋째 마을은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네째 마을은 취산진지촌(山珍支村 혹은 宇珍村다섯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여섯째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라는 마을들이 있었다.

고조선의 유민이란 단군-기자의 조선임을 말함이요동해의 여러 산골짜기(東海濱山谷間) 지금의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경기도 일부충청도 북부  괴산 이북인 충청북도 전역을 지칭하니 이것이 본래 진한의 위치가 대개 그렇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진한이란마한과 변한을 통하여 삼한이라 하였던 것이요 삼한  최초엔 제일 강하였으나 후에 점차 약해짐에 따라 마한이 제일  나라가 되었으니 마한은 이미 한혜재(漢惠宰)2(단기2142)부터진한과 병한  나라를 섭치(攝治) 것으로 보면   나라는 당초에는 통치자(盟主) 있었으나 붕괴되어 다시 일으키지 못했던  같으며 삼국유사에는 병한이 각기 열두개의 소국이 있다 했는데  소국들 자체가 군소 집단으로서 국호를 가지고 생활하여  듯하다.

그러므로 6부의 촌장도 나라의 왕이 없고 백성들만이 각자 나름대로(放逸)살아 가무로 어려운 질서를 근심하게된 것으로도 족히 그때의 형태를   있으며 삼한의 경계를 말하면 진한은 지금의 경기도 일부와 경상도 일부충청도 일부이며 병한은 경상남도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   같다이곳은 후에 수로왕이 금관국(加羅) 세웠다.

 

소벌공과 신라건국(蘇伐公과 新羅建國)

 

삼한이 반도남부에 정립하고 있었으나진한은 명실공히 군주국가가 되지 못하고 백성들만이 마한의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백성들은 항상 국가건설을 계획하고 있던 터 마한의 양왕5(단기2265년한무재(韓武宰원년)임자 어느날 6촌의 고허촌장 소벌공은 다른 촌장들을 소집하여 건국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소벌공은 그해 3월 삭일에 양산촌장 알평(謁平),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 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 가리촌장 지타(祉陀), 고야촌장 호진(虎珍등 다섯 촌장과 더불어 알천안상에서 회의를 열도록 소벌공이 제안하니 각 촌장들은 이에 모두 찬동하고 각기 자제들을 거느리고 참석하였다소벌공은 이 회의서 의장 격이 되어 말하기를 지금 우리들의 많은 민중이 기름진 좋은 땅에서 태평성대하게 살면서도 우리를 다스릴 어른(君主)이 없는 까닭에 백성이 모두 제멋대로(放逸)하며 살고있으니뭉치고 단합하는 힘을 갖지 못하는 형편이므로항상 남의(馬韓)나라의 부당한 간섭과 제어(制御)를 받게 되고또 인접한 변한(弁韓)도 종종 침해하는 일이 자주 있을 뿐 아니라멀리 북으로부터 한()의 4군이 머리를 누르고 있어 언제나 그것들이 우리의 진전에 크게 방해되는 바인 즉 우리는 지금부터 좋은 군주를 얻어 뫼시고 국가정사를 새롭게 하면 이거야말로 자손만대에 백년대계를 이르게 될 것이니 이를 위해 총력을 다함이 어떠하겠는가고 말하니 모든 촌장과 자제들은 이에 동의함은 물론크게 협력할 것을 결의하게 되었다.

소벌공은 이제 군주를 정하는 것만이 남았는데 어떤 군주를 간택하여 백성들의 축복을 받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  높은 언덕에 올라, 6촌의 아름 다음과 기름진 대지를 바라볼 적에 우연히도 이상한 조짐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발길을 그곳으로 옮기고 있었다그것은 남쪽의 양산  蘿井(계림부근) 수풀 사이로 마치 번개같은 서광이 번쩍거리며  속에서  백마가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인다이상히 여긴 소벌공은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본  말은 앞발을 꿇어 절하는 모양으로   굽히다가 -소리를 지르더니 하늘로 사라져버리고  자리에는 푸릇 불긋한  (大卵 개가 놓여 있는  아닌가! 소벌공은  알을 얻어 깨어본 이것은  웬일인가!  속에서는  밖에도 동자 하나가 나오는데 형태의용(形態儀容) 대단히 단정하고 아름다음으로 일면 놀라웠고 한편으로는 기이(奇異)함으로 소벌공은 서둘러 얼싸안고  동천(東泉寺=우물사) 가서 목욕을 시키니 아이의 몸에는 광채가 나고  주변의 새들이 날아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천지가 진동하며 일월이 청명해지는 조짐부터가 심상치 않으므로 공은 좋아서 집으로 데리고  귀중히 기르며  때의 광경을 상징하여 혁거세(赫居世) 하였다혁거세가 13 되던  단기2277 한선재오봉(漢宣宰五鳳)원년에 소벌공은 다시  촌장들을 불러 회의를 열고 혁거세의 자질이 비범함을 자세히 설명한  왕으로 추대할 것을 제의하니  촌장들은 이에 찬동함으로  위에 오르게 하고 국호를 서군벌이라 하니다시 서라벌신라의 일명으로 진한의  땅에  신생국이  것이다신라는 장차   양국을 통일하여 당당한 동해의 대국이  기업을 닦고 천년사직의 융성한 나라가 되었으니 이는 소벌공의 공적이요  촌장들의 보필로 혁거세와 선정이 베풀어 졌음을 뜻한다 중에서도 더욱 소벌공으로 말하면 혁거세가 탄생한 대란을 얻음이라든지여기서 나온 동자를 13 간이나 수양한 관계라 든지 등을 고찰하여 혁거세는  소벌공의 수양아들 격이니 어린 왕을 보좌함에 있어서 실상은 섭정과 같이 국정에 진력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신라의 시조 혁거세왕 19년에(三國遺事변한이 나라를 받쳐 항복해왔고 국기는 더욱 확고해져 가면서 동해의 나라 신라는 대국으로 발전해  것이다참고로 변한 합병시기는 이설이 있다 혁거세 19(서기399) 위군침입  고구려군 5만을 원군으로 임나와 가라를 항복케 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6부에 6성 사성 (6部 6姓 賜姓)

신라의 3대 유리왕은(신라92365) 구 진한의 6부에 지명을 개칭하여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을 양부(梁部 혹은 及梁部),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사량부(沙梁部),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본피부(本彼部),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점량부(漸梁部 혹은 牟梁部),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한기부(漢祇部 혹은 韓祇部),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습비부(習比部)로 하는 동시에 그 6부의 장()에게 각각 성을 내렸으니(사량부(고허촌)의 장 소벌공은 최()씨의 성을 받았다그 외 양산촌 알평에게는 이()대수촌 구례마에계는 손()씨 진지촌 지백호에게는 정()씨 가리촌 기타에게는 배()씨 명활촌 호진에게는 설()씨 이렇게 하여 6부의 6성을 내린 것은 원래 진한의 6촌장이 신라국에 큰공을 세운 연유로 사성(賜姓)이 되었으며 당시 민간으로서는 처음 성을 갖게 된 것이다.

아동반도에서는 단군이래 일반인에게는 성씨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삼황과 오제(三皇五帝때 이미 성이 있었다하여 대허벌 의씨가 풍()염재신농씨가 강()황재헌원씨 공손(公孫)으로 삼황의 각성인 것이다또 오제로는 소호 김천(金天)전욱 고양(高陽)씨 제여 고신(高辛)제요국당()씨가 모두 공손이며 순재유우(有虞)씨 요()씨로 되어 있고 삼대이하로는 말할 것도 없이 사람마다 성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씨 조선이라 하여 기자(箕子)로서 그 성이 기씨라 하되기자도 실은 기 때에 봉한 자작(子爵)이었으므로 기자라 칭한 것이며신라의 소벌공만 하더라도 소벌도리의 4자를 양분하여 머리의 2즉 소벌에다 공자(公字)를 붙혀 소벌공이라 한 것이 마치 소벌씨 같이 보이기도하나 사실 소벌도리는 하나의 이름인 것이지 소벌은 성이요 도리는 이름이었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유리왕 때 사성이야말로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최초의 성씨라 하겠다.

 

최씨(崔氏) 조상 소벌도리(蘇伐都利문헌 기록(文獻 記錄)

고허촌(高墟村)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1 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 박씨(朴氏)이고 이름은 혁거세(赫居世)이다전한(前漢효선제(孝宣帝오봉(五鳳원년 갑자(기원전 57) 4 병진(또는 정월 15)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라 일컬었다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曰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이에 앞서 조선(朝鮮) 유민(遺民)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六村) 이루고 있었다첫째는 알천(閼川양산촌(楊山村)이고둘째는 돌산(突山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嘴山진지촌(珍支村), 넷째는 무산(茂山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고야촌(高耶村)인데이것이 진한 6(辰韓六部) 되었다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嘴山珍支村或云干珍村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고허촌(高墟村우두머리 소벌공(蘇伐公)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옆의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어 가서 보니 말은 보이지 않고  알만 있었다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와 거두어 길렀다나이가 10 세에 이르자 남달리 뛰어나고 숙성(夙成)하였다. 6 사람들은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진한 사람들[辰人] [] ()이라 일컬었는데처음에  알이 마치 박과 같았던 까닭에 () 성으로 삼았다거서간(居西干) 진한의 [辰言] 왕을 뜻하며혹은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고도 하였다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跪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收而養之 及年十餘岐寲然夙成 六部人 以其生神異 推尊之 至是 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故 以朴爲姓 居西干 辰言王或云呼貴人之稱>)”.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소벌도리(蘇伐都利) 소벌공(蘇伐公)이라고 하였으며나정(蘿井곁에서 박혁거세(朴赫居世) 발견하고 그가 10 세가  때까지 키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진주 소씨(晋州蘇氏) 그를 원조(遠祖) 섬기고 있다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진주 소씨(晋州蘇氏) 시조는 고려 말기의 상호군(上護軍소희철(蘇希哲) 되어 있다또한 소벌도리(蘇伐都利) '()' 성씨라는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없으며, '소벌(蘇伐)' 신라의  명칭인 서라벌을 약칭한 것이고 '도리' '집단', '두레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 다음 글이 있다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9 봄에 6(六部) 이름을 고치고 그들에게 각각 () 주었다양산부(楊山部) 양부(梁部) 고치고  성을 이씨(李氏) 하였으며고허부(高墟部) 사량부(沙梁部) 고치고  성을 최씨(崔氏) 하였으며대수부(大樹部) 점량부(漸梁部牟梁部) 고치고  성을 손씨(孫氏) 하였으며간진부(于珍部) 본피부(本彼部) 고치고  성을 정씨(鄭氏) 하였으며가리부(加利部) 한비부(漢祈部) 고치고  성을 배씨(裴氏) 하였으며명활부(明活部) 습비부(習北部) 고치고  성을 설씨(薛氏)라고 하였다 (九年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一云牟梁姓孫 于珍部爲本彼部( 新本作干姓鄭 加利部爲漢祈部 姓裴 明活部爲習北部 姓薛)”. 

 기록을 보면 소벌도리(蘇伐都利) 후손인 고허부(高墟部) 사량부(沙梁部) 고치고 그들에게 최씨(崔氏성을 주었다고 되어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1 신라시조 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조에는 소벌도리(蘇伐都利)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한(辰韓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 있었으니, …… 2. 돌산(突山고허촌(高墟村)이니 촌장(村長)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처음 형산(兄山) 내려왔으니 사량부(沙梁部  읽는다 涿으로 쓰나 역시  읽는다정씨(鄭氏) 조상이 된다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고 하는데 구량벌(仇梁伐)ㆍ마등오(麻等烏)ㆍ도북(道北)ㆍ회덕(廻德 남촌(南村) 이에 속한다(지금이라고  것은 고려 태조가  것이니 다음도 같다). …… 4. 취산 진지촌(珍支村ㆍ혹 賓之 하며  賓子 또는 氷之라고도 한다)이니 촌장(村長) 지백호(智伯虎)처음 화산(花山)에서 내려왔으니 이는 본피부(本彼部최씨(崔氏) 조상이 되었다지금은 통선부(通仙部)라고 하는데 시파(柴杷 동남촌(東南村) 이에 속한다최치원(崔致遠)  본피부(本彼部사람이었다지금 황룡사(黃龍寺남쪽과 미탄사(味呑寺남쪽에  터가 있어 최후(崔侯)  집이라 하니 분명하다.”(辰韓之地 古有六村 …… 二曰突山高墟村 長曰蘇伐都利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梁讀云道 或作涿亦音道鄭氏祖今曰南山部仇良伐 麻等烏 道北 廻德 等南村屬焉稱今曰者 太祖所置也下例知> …… 四曰山珍支村一作賓之又賓子 又氷之>, 長曰智伯虎 初降于花山 是爲本彼部崔氏祖 今曰通仙部 柴巴等東南村屬焉 致遠乃本彼部人也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 云是崔侯古宅也)

 ‘삼국유사(三國遺事)’ 기록에는 진지촌(珍支村촌장(村長지백호(智伯虎) 최씨(崔氏)고허촌(高墟村촌장(村長소벌도리(蘇伐都利) 정씨(鄭氏) 되어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기록과는 정반대다그런데 정씨(鄭氏) 경주(慶州)ㆍ고성(固城)ㆍ공산(公山)ㆍ광주(光州)ㆍ금성(錦城 40 본이 전하며중국에서 귀화한 경우인 서산 정씨(瑞山鄭氏) 낭야 정씨(瑯揶鄭氏) 제외한 정씨(鄭氏) 대부분은 신라 6부의 진지촌(嘴山珍支村촌장 지백호(智伯虎) 도시조(都始祖) 하고 있다.

 

 

최씨 분파도(崔氏 分派圖)

 

문헌에 의하면 우리 나라 최씨(崔氏)387()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거의가 지명이고 실제 시조(始祖)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43본이다. ‘경주최씨상계세보(慶州崔氏上系世譜)’소벌도리(蘇伐都利)로부터 24세손(世孫) 최치원(崔致遠)의 윗대에서 분파(分派)된 본관으로 개성(開城)ㆍ동주(東州·철원)ㆍ전주(全州·군옥파)가 있고, 최치원(崔致遠)의 후대에서는 함양(咸陽)ㆍ청주(淸州)ㆍ영흥(永興)ㆍ충주(忠州)ㆍ용강(龍崗)ㆍ수원(水原)ㆍ부안(扶安)ㆍ강릉(江陵)ㆍ강화(江華)ㆍ화순(和順)ㆍ통천(通川)ㆍ양천(陽川)ㆍ원주(原州)ㆍ해주(海州)ㆍ진주(晋州)ㆍ탐진(耽津)ㆍ전주(全州·순작, )을 기록하고 있다. 거의 모든 최씨(崔氏)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경주 최씨(慶州崔氏)를 원조(元祖)로 하여 소벌도리(蘇伐都利)와 그로부터 24세손(世孫)인 최치원(崔致遠)을 잇는 같은 후예임이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득성조 소벌도리(得姓祖 蘇伐都利 2(대벌리(大伐利 3(소벌리(小伐利 4(대평(大平 5(호빈(  6(광윤(桄允 7(() – ()  8(( 9() 홍( 10(( 11(() – 동지나(東之奈 12(( 13(( 14(( 15(은의(殷義 16(서봉(瑞鳳 17(혜양(惠陽 18(태임(太壬 19(동웅(東雄 20(형공(亨公) – 형일(亨一 21(림분(林芬 22(계양성(桂陽聖) – 계양현(桂陽賢)[전주全州(완산完山초계草溪광양光陽양천陽川금천衿川)(강릉江陵), (곡강曲江순천順川영천永川), 흥해興海황주黃州안동安東]  23(견일(肩逸)산윤(山允) 산두(山斗)[삭녕朔寧一派]  - 리정(利貞)[낭주朗州철원鐵原전주全州동주東州상원祥原一派]  24(경주최씨(慶州崔氏)시조(始祖치원(致遠) 서원(棲遠)  25(은함(殷含) 도함(道含)[계림鷄林해주海州(아산牙山용궁龍宮용주龍州죽산竹山청송靑松), 탐진耽津 (나주羅州강진康津괴산槐山). 진주晋州一派 26(승로(承老) 윤로(胤老 27(() – ()[강릉江陵(간성杆城), (강화江華). 통천通川화순和順원주原州태인泰仁우봉牛峰一派] - ()[청주淸州(용강龍岡부안扶安). 양주楊州수원水原함양咸陽밀양密陽광주廣州고부古阜一派] - ()[연풍延豊직산稷山무주茂珠문경聞慶一派]  28() [덕분(德芬 29(( 30(성유(聖楡 31()] 제안(薺顔) 선지(善之)영흥永興월성月城一派】 / 광위(光位)

 

최씨(崔氏)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로 하늘에서 형산(兄山)으로 내려왔으며, 32년(신라 유리왕 9) 최씨로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소벌도리가 정(鄭)씨의 조상으로 되어있으며, 진주소씨(蘇氏)도 소벌도리를 시조로하고 있다.
그러나 최씨(崔氏)의 실질적인 시조는 신라 말기의 대문장가이며 소벌도리의 24세손인 최치원(崔致遠)이며, 최치원의 윗대에서 개성, 삭녕, 동주(철원), 전주(최군옥) 등의 본관으로 나위어지고 최치원을 1세조로 하는 경주 최씨에서 최치원의 첫째 아들 최승로(崔承老)의 후손에서 함양, 청주, 충주, 영흥, 용강, 수원, 부안, 강릉, 강화, 화순, 통천, 양천, 원주 등으로 분관이 되었고 지손에서 해주, 진주, 탐진, 전주(최균) 등으로 분관했다.최씨는 경주 최씨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해주 최씨, 우봉 최씨 등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전주 최씨와, 동주 최씨도 상당한 세력을 펼쳤으나 최씨는 조선시대보다 신라, 고려시대에 세력을 떨쳤다.
그밖에 김씨에서 최씨로 성을 하사받은 수성최씨와 중국의 귀화 성씨인 충주최씨가 있다.
천룡사(天龍寺)   
동도(東都)의 남산 남쪽에 한 봉우리가 솟아 있다. 우리말로는 수리산〔高位山〕이라고 한다. 그 산의 양지쪽에 절이 있으니 속칭으로 수리사〔高寺〕 혹은 천룡사(天龍寺)라고 한다.
《토론삼한집(討論三韓集)》에 이르기를, 계림(鷄林) 땅에 딴 곳에서 흘러온 두 물줄기와 거슬러 흐르는 한 물줄기가 있는데, 그 거슬러 흐르는 물과 딴 곳에서 흘러온 물의 두 근원이 하늘의 재앙을 진압하지 못한다면 천룡사가 뒤집혀 무너앉는 화를 맞게 된다고 했다.
만간에 전해 이르기를, 거슬러 흐르는 물이란 이 주(州)의 남방 마등오촌(馬等烏村)의 남으로 흐르는 내가 이 것인데, 또 이물의 근원은 천룡사에 뻗치게 된다고 한다.

 

중국 사자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했다.

"이 절을 파괴하면 곧 나라가 망할 것이다."
또 서로 전해 이른다. 옛날 이 절의 시주(施主)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이름을 천녀(天女)·용녀(龍女)라 했다. 부모는 두 딸을 위해 절을 세우고, 두 딸의 이름을 따서 천룡사라 했다.
경지(境地)가 이상하며, 불도를 돕는 도량이었는데 신라 말기에 와서 쇠잔하여 파괴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중생사(衆生寺) 관음보살이 젖먹여 기른 최은함(崔殷諴)의 아들은 승로(承魯)였는데, 승로는 숙(肅)을 낳고 숙은 시중(侍中) 제안(齊顔)을 낳았다. 제안은 이 절을 고쳐 수축하여 없었던 절을 일으켜, 이에 석가만일도량(釋迦萬日道場)을 설치하고, 조정의 명을 받아 다시 신서(信書)의 원문까지 절에 남겨두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자 절을 지키는 신이 되었는데, 자못 신령스럽고 이상함을 나타내었다.
그 신서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시주인 내사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주국(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柱國) 최제안은 쓴다.

동경(東京) 고위산의 천룡사는 쇠잔하고 파괴된지 여러 해나 되었으므로, 제자는 특히 성수(聖壽)가 무강(無疆)하시고 국가가 편안·태평하기를 원하여 전당(殿堂), 낭각(廊閣)과 방사(房舍), 주고(廚庫)를 모두 이룩하고 돌부처 이소불(泥塑佛) 몇 구를 만들어 석가만일도량을 새로 설치했다. 이미 나라를 위해 수리하여 세웠으니, 관가에서 주지를 명함이 역시 옳겠으나, 주지를 교대할 때에는 도량의 승려들이 안심할 수 없다. 납입전(納入田)으로 사원을 충족함을 보면, 팔공산 지장(地藏寺)와 같은 절은 납입전이 200결이었고, 비슬산 도선사(道仙寺)는 20결이었고, 서경(西京) 사면의 산사(山寺)도 각기 20결이었으나, 모두 유직·무직을 막론하고, 모름지기 계(戒)를 갖추고 재주가 뛰어난 이를 뽑아서 절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여러 차례 주지로 삼아 분향수도(焚香修道)함을 상례로 삼아왔다.


제자는 이 풍습을 듣고 기뻐하여 우리 천룡사에서도 또한 절의 많은 승려 가운데서 재주와 덕이 뛰어난 고승을 뽑아서 동량(棟梁)으로 삼아 주지로 임명하여 길이 분향수도하게 하려 한다. 문자로 자세히 기록하여 강사(剛司)에 맡겨두니 당시의 주지를 처음으로 삼아 유수관(留守官)의 공문을 받아 도량의 여러 승려들에게 보일 것이다. 승려들은 각기 알아두어야 한다.


중희(重熙) 9년 6월 일, 관직을 갖추어 앞과 같이 서명했다. 살펴보면, 중희는 거란 흥종(興宗)의 연호니 고려 정종 6년 경진(1040)이다.
三國遺事卷第三 塔像第四 091 천룡사(天龍寺)
東都南山之南(동도남산지남) : 동도(東都)의 남산(南山) 남쪽에 
有一峯屹起(유일봉흘기) :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俗云高位山(속운고위산) : 세속(世俗)에서는 고위산(高位山)이라 한다. 
山之陽有寺(산지양유사) : 산 남쪽에 절이 있는데 
俚云高寺(리운고사) : 속칭(俗稱) 고사(高寺), 
或云天龍寺(혹운천룡사) : 또는 천룡사(天龍寺)라고 한다.
討論三韓集云(토론삼한집운) : <토론삼한집(討論三韓集)>에는 이렇게 말했다. 
鷄林土內有客水二條(계림토내유객수이조) : "계림(鷄林)에는 두 줄기의 객수(客水)와 
逆水一條(역수일조) : 한 줄기의 역수(逆水)가 있는데 
其逆水客水二源(기역수객수이원) : 그 역수와 객수의 두 근원이 
不鎭天災(불진천재) : 천재(天災)를 진압하지 못하면 
則致天龍覆沒之災(칙치천룡복몰지재) : 천룡사(天龍寺)가 뒤집혀 무너지는 재앙이 생긴다."
俗傳云(속전운) : 속전(俗傳)에는 이렇게 말한다. 
逆水者州之南(역수자주지남) : "역수는 이 고을 남쪽 
馬等烏村南流川是(마등오촌남류천시) : 마등오촌(馬等烏村)의 남쪽을 흐르는 내가 이것이다. 
又是水之源致天龍寺(우시수지원치천룡사) : 또 이 물의 근원이 천룡사에서 시작되는데, 
中國來使樂鵬龜來見云(중국내사락붕귀내견운) : 중국에서 온 사자(使者) 악붕귀(樂鵬龜)가 와서 보고 말하기를,
破此寺(파차사) : '이 절을 파괴하면 
則國亡無日矣(칙국망무일의) : 이내 나라가 망할 것이다.'"
又相傳云(우상전운) : 또 서로 전하는 말에는 이렇게 말했다. 
昔有檀越(석유단월) : "옛날 단월(檀越)이 있었는데 
有二女(유이녀) : 딸 둘이 있어서 
曰天女龍女(왈천녀용녀) : 이름을 천녀(天女)·용녀(龍女)라 하였는데, 
二親爲二女創寺因名之(이친위이녀창사인명지) :
부모가 두 딸을 위해서 절을 세우고 딸들의 이름을 인하여 그 이름을 지었다."
境地異常助道之場(경지이상조도지장) : 이곳은 경지(境地)가 이상하고 불도(佛道)를 돕는 곳이었는데 
羅季殘破久矣(라계잔파구의) : 신라 말년에 파괴되어 이미 오래되었다. 
衆生寺大聖所乳(중생사대성소유) : 중생사(衆生寺)의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젖을 먹여 키운 
崔殷諴之子承魯(최은함지자승로) : 최은함(崔殷함)의 아들 승로(承魯)가 
魯生肅(로생숙) : 숙(肅)을 낳고 
肅生侍中齊顔(숙생시중제안) : 숙(肅)이 시중(侍中) 제안(齊顔)을 낳았는데, 
顔乃重修起廢(안내중수기폐) : 제안(齊顔)이 이 절을 중수(重修)하여 없어졌던 절을 일으켰다. 
仍置釋迦萬日道場(잉치석가만일도량) : 이에 석가만일도량(釋迦萬日道場)을 설치하고, 
受朝旨(수조지) : 조정의 명을 받았으며, 
兼有信書願文(겸유신서원문) : 다시 신서(信書)와 원문(願文)까지 
留于寺(유우사) : 절에 남겨 두었다. 
旣卒(기졸) : 그는 세상을 떠나자 
爲護伽藍神(위호가람신) : 절을 지키는 신(神)이 되어 
頗著靈異(파저령이) : 자못 신령스럽고 이상한 일을 많이 나타냈다.
其信書略曰(기신서략왈) : 그 신서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檀越內史侍郞(단월내사시랑) : "단월인 내사시랑 
同內史門(동내사문) : 동내사문 
下平章事(동내사문하평장사) : 하평장사 
柱國崔齊顔狀(주국최제안장) : 주국 최제안(崔齊顔)은 쓰노라. 
東京高位山天龍寺殘破有年(동경고위산천룡사잔파유년) :
경주(慶州) 고위산(高位山)의 천룡사가 파괴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弟子特爲聖壽天長民國安泰之願(제자특위성수천장민국안태지원) :
이에 제자 최제안은 특별히 성수(聖壽)가 무강하시고 국가가 편안하고 태평하기를 원해서 
殿堂廊閣(전당랑각) : 전당(殿堂)·낭각(廊閣)과 
房舍廚庫(방사주고) : 방사(房舍)·주고(廚庫)를 
已來興構畢具(이래흥구필구) : 모두 갖추어 이룩하고, 
石造泥塑佛聖數軀(석조니소불성수구) : 또 석조불(石造佛)과 이소불상(泥塑佛像) 몇 개를 만들어 
開置釋迦萬日道場(개치석가만일도장) : 석가만일도량을 열었다
旣爲國修營(기위국수영) : 이미 국가를 위해서 수리하여 세웠으니 
官家差定主人亦可(관가차정주인역가) : 조정에서 절의 주지(住持)를 정해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이다. 
然當遞換交代之時(연당체환교대지시) : 하지만 이 주지를 교대할 때에는 
道場僧衆不得安心(도장승중불득안심) : 도량(道場)의 중들이 안심하고 지낼 수가 없다. 
側觀入田稠足寺院(측관입전조족사원) : 희사(喜捨)한 토지를 가지고 사원(寺院)을 충족하게 하는 것을 보면, 
如公山地藏寺入田二百結(여공산지장사입전이백결) :
팔공산(八公山)의 지장사(地藏寺)와 같은 절은 희사한 토지가 200결(結)이었고, 
毗瑟山道仙寺入田二十結(비슬산도선사입전이십결) : 비슬산(毗瑟山)에 있는 도선사(道仙寺)는 20결이었고, 
西京之四面山寺(서경지사면산사) : 서경(西京) 사면에 있는 산사(山寺)들도 
各田二十結例(각전이십결례) : 각기 20결씩이었으며, 
皆勿論有職無職(개물논유직무직) : 이들은 모두 유직(有職)·무직(無職)을 물론하고 
須擇戒備才高者(수택계비재고자) : 모름지기 계(戒)를 갖추고 재주가 높은 이를 뽑아서 
社中衆望(사중중망) : 절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連次住持焚修(련차주지분수) : 여러 차례를 계속하여 주지로 삼아 분향(焚香)하고 도 닦는 것을 
以爲恒規(이위항규) : 상례(常例)로 삼았다. 
弟子聞風而悅(제자문풍이열) : 제자 제안(齊顔)은 이 풍습을 듣고 기뻐하여 
我此天龍寺(아차천룡사) : 우리 천룡사에서도 
擇選才德雙高大德亦於社衆之中(택선재덕쌍고대덕역어사중지중) :
역시 절의 많은 중들 가운데서 재주와 덕이 함께 뛰어난 고승으로 
兼爲棟梁(겸위동량) : 동량(棟樑)이 될 만한 사람을 뽑아서 
差主人鎭長焚修(차주인진장분수) : 주지로 삼아 길이 분향(焚香) 수도(修道)하게 하고자 한다. 
具錄文字(구록문자) : 이에 갖추어 글로 기록하여 
付在剛司(부재강사) : 강사(剛司)에게 맡겨 두는 것이니 
自當時主人爲始(자당시주인위시) : 이때부터 비로소 주지를 두게 되었다. 
受留守官文通(수류수관문통) : 유수관(留守官)은 공문(公文)을 받아 
示道場諸衆(시도장제중) : 도량의 여러 중들에게 보여 
各宜知悉(각의지실) : 모두를 각각 알도록 할 것이다. 
重熙九年六月日(중희구년육월일) : 중희(重熙) 9년 6월 일에 
具銜如前署(구함여전서) : 관직(官職)을 갖추어 위와 같이 서명(署名)한다."


按重熙乃契丹興宗年號(안중희내계단흥종년호) : 상고해 보면 중희(重熙)는 거란 흥종(興宗)의 연호이며, 
本朝靖宗七年庚辰歲也(본조정종칠년경진세야) : 본조(本朝) 정종(靖宗) 7년인 경신년(10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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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공식적으로 건국되기 전 경주시 지역의 6촌 중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다. 훗날 신라 6부 중 사량부의 시조가 됐다. 이름의 '소벌'은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과 같은 어원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서는 6촌 촌장이 될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학계에서는 앞서 멸망한 고조선 유민 세력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서는 소벌도리가 나정에서 혁거세의 알을 처음 발견하고, 10살까지 집에서 키우며 나중에 왕으로 추대할 때도 주도적 역할을 한다. 설화적 윤색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혁거세 집단이 즉위하고 신라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데서도 6촌 중 가장 큰 공을 세운 후원세력의 우두머리로 볼 수 있다.
"어느 날 고허촌장 소벌공(혹은 소벌도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곁의 숲 사이에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래서 가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이 한개 있어 깨뜨려보니 한 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는데, 10여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혁거세가 난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 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하였다."《삼국사기》

 

그의 아들 최대벌리(崔大伐利) 혈통으로 25세손 최치원이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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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허촌(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제1권 <혁거세 거서간(赫居世居西干)>조를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성(姓)이 박씨(朴氏)이고 이름은 혁거세(赫居世)이다.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 갑자(기원전 57년) 4월 병진(또는 정월 15일)에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라 일컬었다. 이때 나이는 13세였고 나라 이름을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始祖 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丙辰<一曰正月十五曰> 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那伐)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뉘어 살며 6촌(六村)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楊山村)이고,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 넷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인데, 이것이 진한 6부(辰韓六部)가 되었다.(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嘴山珍支村<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고허촌(高墟村)의 우두머리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蘿井) 옆의 숲 사이에서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었으므로 가서 보니 문득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만 있었다. 그것을 쪼개니 어린아이가 나왔으므로 거두어서 길렀다. 나이가 10여 세에 이르자 남달리 뛰어나고 숙성(夙成)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비하고 기이하였으므로 그를 받들어 존경하였는데, 이때 이르러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 진한 사람들[辰人]은 박[瓠]을 박(朴)이라 일컬었는데, 처음에 큰 알이 마치 박과 같았던 까닭에 박(朴)을 성으로 삼았다. 거서간(居西干)은 진한의 말[辰言]로 왕을 뜻하며, 혹은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고도 하였다.(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只有大卵 剖之 有嬰兒出焉 則 收而養之 及年十餘岐寲然夙成 六部人 以其生神異 推尊之 至是 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瓠故 以朴爲姓 居西干 辰言王<或云呼貴人之稱>)”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소벌공(蘇伐公)이라고 하였으며, 나정(蘿井) 곁에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발견하고 그가 10여 세가 될 때까지 키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주 소씨(晋州蘇氏)는 그를 원조(遠祖)로 섬기고 있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진주 소씨(晋州蘇氏)의 시조는 고려 말기의 상호군(上護軍) 소희철(蘇希哲)로 되어 있다. 또한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소(蘇)'가 성씨라는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없으며, '소벌(蘇伐)'은 신라의 옛 명칭인 서라벌을 약칭한 것이고 '도리'는 '집단', '두레'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씨(崔氏)의 조상 소벌도리(蘇伐都利)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 제1권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봄에 6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그들에게 각각 성(姓)을 주었다.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로 고치고 그 성을 이씨(李氏)로 하였으며,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로 고치고 그 성을 최씨(崔氏)로 하였으며,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ㆍ牟梁部)로 고치고 그 성을 손씨(孫氏)로 하였으며, 간진부(于珍部)는 본피부(本彼部)로 고치고 그 성을 정씨(鄭氏)로 하였으며, 가리부(加利部)는 한비부(漢祈部)로 고치고 그 성을 배씨(裴氏)로 하였으며,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北部)로 고치고 그 성을 설씨(薛氏)라고 하였다.(九年 春 改六部之名 仍賜姓 楊山部爲梁部 姓李 高墟部爲沙梁部 姓崔 大樹部爲漸梁部(一云牟梁) 姓孫 于珍部爲本彼部(于 新本作干) 姓鄭 加利部爲漢祈部 姓裴 明活部爲習北部 姓薛)” 

이 기록을 보면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인 고허부(高墟部)를 사량부(沙梁部)로 고치고 그들에게 최씨(崔氏) 성을 주었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의 최씨(崔氏)에 관한 부분.

문헌에 의하면 우리 나라 최씨(崔氏)는 387본(本)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거의가 지명이고 실제 시조(始祖)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43본이다. ‘경주최씨상계세보(慶州崔氏上系世譜)’의 기록으로는 소벌도리(蘇伐都利) 24세손 최치원(崔致遠)의 윗대에서 분파(分派)된 본관으로 개성(開城)ㆍ동주(東州·철원)ㆍ전주(全州·군옥파)가 있고, 최치원(崔致遠)의 후대에서는 함양(咸陽)ㆍ청주(淸州)ㆍ영흥(永興)ㆍ충주(忠州)ㆍ용강(龍崗)ㆍ수원(水原)ㆍ부안(扶安)ㆍ강릉(江陵)ㆍ강화(江華)ㆍ화순(和順)ㆍ통천(通川)ㆍ양천(陽川)ㆍ원주(原州)ㆍ해주(海州)ㆍ진주(晋州)ㆍ탐진(耽津)ㆍ전주(全州·순작, 균)가 분파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최씨(崔氏)가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경주 최씨(慶州崔氏)를 원조(元祖)로 하여 소벌도리(蘇伐都利)와 그의 24세손인 최치원(崔致遠)을 잇는 같은 후예임이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 득성시조(得姓始祖)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이어진 최씨(崔氏) 상계보(上系譜). 

 

 

突山 高墟村長 蘇伐都利
 
  2세(2世) 대벌리(大伐利)  
3세(3世) 소벌리(小伐利)
4세(4世) 대평(大平)
5세(5世) 호빈(昊彬)
6세(6世) 광윤(允)
7세(7世) 조()
8세(8世) 서()
9세(9世) 공(𢖷)
10세(10世) 국(局)
11세(11世) 무(茂)
12세(12世) 비()
13세(13世) 개()
14세(14世) 경(敬)
15세(15世) 은의(殷義)
16세(16世) 서봉(瑞鳳)
17세(17世) 혜양(惠陽)
18세(18世) 태임(太壬)
19세(19世) 동웅(東雄)
20세(20世) 형공(亨公)
21세(21世) 림분(林芬)
22세(22世) 계양성(桂陽聖)
23세(23世) 산윤(山允)
24세(24世) 치원(致遠)

 


최/씨/세/계/분/파/도(崔/氏/世/系/分/派/圖)
 
 득성조(得姓祖)소벌도리(蘇伐都利)님-<2세손>대벌이(大伐利)님-<3세손>소벌이(小伐利)님-<4세손>대평(大平)님-<5세손>호빈(昊彬)님-<6세손>광윤(桄允)님-<7세손>장남(長男)조(厝)님-<8세손>서(屖)님-<9세손>공(𢖷)님-<10세손>국(局)님-<11세손>장남(長男)무(茂)님-<12세손>비(岯)님-<13세손>개(玠)님-<14세손>창(敞)님-<15세손>은의(殷義)님-<16세손>서봉(瑞鳳)님-<17세손>혜양(惠陽)님-<18세손>태임(太任)님-<19세손>동웅(東雄)님-<20세손>장남(長男)형공(亨公)님-<21세손>임분(林芬)님-<22세손>장남(長男)계양성(桂陽聖)님-<23세손>장남(長男)산윤(山允)일명,견일(肩逸)님-<24세손>장남(長男)경주최씨(慶州崔氏)시조(始祖)치원(致遠)님-<25세손>장남(長男)은함(殷含)님-<26세손>장남(長男)승로(承老)님-<27세손>장남(長男)숙(肅)님-<28세손>장남(長男)제안(齊顔)님. 
<27세손>차남(次男)량(亮)님【江陵강릉崔氏일파(諱必達휘필달님.杆城간성崔氏일파諱之洵휘지순님).(諱文漢휘문한님,江華강화崔氏일파).通川통천,和順화순,原州원주,泰仁태인,牛峰우봉崔氏일파】.  
<27세손>삼남(三男)의(儀)님-<28세손>주(周)님【州청주崔氏일파(龍岡용강,扶安부안崔氏일파).楊州양주,水原수원,咸陽함양,密陽밀양,廣州광주,古阜고부崔氏일파.  
<27세손>사남(四男)우(遇)님【豊연풍,稷山직산,茂珠무주,聞慶문경崔氏일파】. 
<26세손>차남(次男)윤로(胤老)님-<27세손>장남(長男)방언(邦彦)님-<28세손>지윤(之潤)님. <27세손>차남(次男)림(琳)님-<28세손>호(昊)님. <27세손>삼남(三男)종지(宗祗)님-<28세손>언(彦)님. 
<25세손>차남(次男)도함(道含)일명,윤순(允順)님【鷄林계림崔氏일파】-<26세손>첨로(添老)님【海州해주崔氏일파(牙山아산,龍宮용궁,龍州용주,竹山죽산,靑松청송崔氏일파),耽津탐진崔氏일파(羅州나주,康津강진,槐山괴산崔氏일파).晋州진주崔氏일파】. 
<28세손>선지(善之)님【永興영흥,月城월성崔氏일파】. 
<24세손>차남(次男)서원(棲遠)님. 
<23세손>차남(次男)산두(山斗)님【朔寧삭녕崔氏일파】-<24세손>인곤(仁滾)님-<25세손>도(道)님-<26세손>창로(昌老)님. 
<23세손>삼남(三男)이정(利貞)님【朗州낭주,鐵原철원,全州전주崔氏일파(群玉휘군옥님)】-<24세손>장남(長男)승우(承佑)님-<25세손>준옹(俊邕)님【東州동주崔氏일파】-<26세손>동무(東武)님. <24세손>차남(次男)우달(佑達)님)님【開城개성崔氏일파】-<25세손>응(凝)님【祥原상원崔氏일파】-<26세손>상(祥)님. 
<22세손>차남(次男)계양현(桂陽賢)님-<23세손>언휘(彦撝)님【全州전주崔氏일파(諱純爵휘순작님.完山완산,草溪초계,光陽광양.陽川양천,衿川금천崔氏일파).(諱阿휘아님.江陵강릉崔氏일파諱欣奉휘흔봉님).(諱均휘균님.曲江곡강,順川순천,永川영천崔氏일파)興海흥해,黃州황주崔氏일파】. <24세손>장남(長男)광윤(光胤)님安東안동崔氏일파】. <24세손>차남(次男)행귀(行歸)님. <24세손>삼남(三男)광원(光遠)님-<25세손>항(沆)님-<26세손>장남(長男)유부(有孚)님-<27세손>공익(公翊)님-<28세손>지(贄)님. <26세손>차남(次男)영부(永孚)님.  
<20세손>차남(次男)형일(亨一)님-<21세손>선경(𤩕敬)님-<22세손>창(昌)님. 
<11세손>차남(次男)동지내(東之奈)님. 
<7세손>차남(次男)지(之)님.

 

정씨(鄭氏)의 조상 소벌도리(蘇伐都利)

‘삼국유사(三國遺事)’ 제1권 <신라시조 혁거세왕(新羅始祖赫居世王)>조에는 소벌도리(蘇伐都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진한(辰韓) 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촌(村)이 있었으니, …… 2.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이니 촌장(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利)이다. 처음 형산(兄山)에 내려왔으니 사량부(沙梁部ㆍ梁은 道로 읽는다. 혹 涿으로 쓰나 역시 道로 읽는다) 정씨(鄭氏)의 조상이 된다. 지금은 남산부(南山部)라고 하는데 구량벌(仇梁伐)ㆍ마등오(麻等烏)ㆍ도북(道北)ㆍ회덕(廻德) 등 남촌(南村)이 이에 속한다(지금이라고 한 것은 고려 태조가 둔 것이니 다음도 같다). …… 4. 취산 진지촌(珍支村ㆍ혹 賓之라 하며 또 賓子 또는 氷之라고도 한다)이니 촌장(村長)은 지백호(智伯虎)다. 처음 화산(花山)에서 내려왔으니 이는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통선부(通仙部)라고 하는데 시파(柴杷) 등 동남촌(東南村)이 이에 속한다. 최치원(崔致遠)은 이 본피부(本彼部) 사람이었다. 지금 황룡사(黃龍寺) 남쪽과 미탄사(味呑寺) 남쪽에 옛 터가 있어 최후(崔侯)의 옛 집이라 하니 분명하다.”(辰韓之地 古有六村 …… 二曰突山高墟村 長曰蘇伐都利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梁讀云道 或作涿, 亦音道> 鄭氏祖今曰南山部, 仇良伐 麻等烏 道北 廻德 等南村屬焉<稱今曰者 太祖所置也下例知> …… 四曰취山珍支村<一作賓之又賓子 又氷之>, 長曰智伯虎 初降于花山 是爲本彼部崔氏祖 今曰通仙部 柴巴等東南村屬焉 致遠乃本彼部人也今皇龍寺南味呑寺南有古墟 云是崔侯古宅也)

위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는 진지촌(珍支村) 촌장(村長) 지백호(智伯虎)는 최씨(崔氏)로, 고허촌(高墟村) 촌장(村長) 소벌도리(蘇伐都利)는 정씨(鄭氏)로 되어 있으니,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의 기록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정씨(鄭氏)는 경주(慶州)ㆍ고성(固城)ㆍ공산(公山)ㆍ광주(光州)ㆍ금성(錦城) 등 40여 본이 전하며, 중국에서 귀화한 경우인 서산 정씨(瑞山鄭氏)와 낭야 정씨(瑯揶鄭氏)를 제외한 정씨(鄭氏)의 대부분은 신라 6부의 진지촌(嘴山珍支村) 촌장 지백호(智伯虎)를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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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崔氏 2세-殷含(은함) 後孫 系派圖

1세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10세 11세 12세  파명

최치원 은함  승로  숙   제안  계훈  현배  습   유경  자운  청   연지

崔致遠─殷含 ┬承老 ┬肅  ─齊顔 ┬繼勳 ┬玄培 ─隰  ─有慶 ┬子雲 ┬淸  ┬淵止 →관가정공청파

文昌侯    │   │       │   │           │   │觀家亭│신지

       │   │       │   │           │   │   ├信止

       │   │       │   │           │   │   │검지

       │   │       │   │           │   │   ├儉止

       │   │       │   │           │   │   │한지

       │   │       │   │           │   │   └漢止

       │   │       │   │           │   │강   온손

       │   │       │   │           │   └江  ┬溫孫 →판서공강파

       │   │       │   │           │   判書公 │계손

       │   │       │   │           │       ├係孫

       │   │       │   │           │       │검손

       │   │       │   │           │       └儉孫

       │   │       │   │           │수운  호   단

       │   │       │   │           ├峀雲 ┬澔  ┬鄲  →광정공단파

       │   │       │   │           │   │   │匡靖公

       │   │       │   │           │   │   │현진

       │   │       │   │           │   │   └賢進 →판서공현진파

       │   │       │   │           │   │    判書公

       │   │       │   │           │   │진   지철

       │   │       │   │           │   ├津  ┬之哲 →판서공진파

       │   │       │   │           │   │判書公│호남

       │   │       │   │           │   │   └好男

       │   │       │   │           │   │연   윤공

       │   │       │   │           │   └淵  ─允公 →상서공연파

       │   │       │   │           │    尙書公

       │   │       │   │           │해운  흘   상형

       │   │       │   │           └海雲 ─汔  ─尙洞 →좌윤공해운파

       │   │       │   │현우          左尹公

       │   │       │   ├玄祐

       │   │       │   │현진  수   구정  반   윤지

       │   │       │   └玄進 ┬修  ─九鼎 ─盤  ─潤地

       │   │       │       │난   안준  유정  기   세청

       │   │       │       ├渜  ─安俊 ─有井 ┬淇  ─世淸 →길성군유정파

       │   │       │       │        吉城君│호   세징

       │   │       │       │           ├浩  ─世澄

       │   │       │       │           │홍   세연

       │   │       │       │           └泓  ─世淵

       │   │       │       │탁   송무  수안  윤겸  홍용

       │   │       │       └倬  ─松茂 ┬守安 ─允謙 ┬鴻龍 →계림군탁파

       │   │       │        鷄林君    │       │봉용

       │   │       │               │       ├鳳龍

       │   │       │               │       │삼용

       │   │       │               │       └三龍

       │   │       │               │찬   훈   중엽

       │   │       │               └瓚  ─焄  ─重燁

       │   │       │문훈  연   사원  중윤  명   입팽  계상

       │   │       ├文勳 ─漣  ┬士元 ─仲允 ─明  ─立伻 ─繼常 →판서공사원파

       │   │       │       │判書公

       │   │       │       │사형  

       │   │       │       │士亨    

       │   │       │       │사리    

       │   │       │       │士利    

       │   │       │       │사정  

       │   │       │       └士貞 

       │   │       │상훈  수   준   구호  종진  첨년  경희

       │   │       └尙勳 ┬洙  ─俊  ─九昊 ─宗津 ─添年 ┬敬熙 →찬성공종진파

       │   │        侍中公│            贊成公    │경원

       │   │           │                   ├敬元

       │   │           │                   │경문

       │   │           │                   └敬文

       │   │           │무   윤

       │   │           └懋  ─倫

       │   │의   주   기우  응청  정일  형삼  지윤  신우  동국

       │   └儀  ─周  ─奇遇 ┬應淸 ─正日 ─亨三 ─智允 ─信友 ─東國 →청성후주파

       │        淸城候    │응시  정호  형구  유의  만선  창묵

       │               └應時 ─正浩 ─亨九 ─由義 ─萬善 ─昌默

       │윤로  방언  지윤  환   득해  규   세홍  충량  타   호남

       └胤老 ┬邦彦 ─之潤 ─渙  ┬得海 ─珪  ┬世洪 ┬忠良 ─沱  ─好男 →문순공환파

           │        文順公│       │   │충보  흡   호응

           │           │       │   ├忠輔 ┬洽  ┬好應

           │           │       │   │   │   │정생

           │           │       │   │   │   └挺生

           │           │       │   │   │소   몽로

           │           │       │   │   └沼  ─夢老

           │           │       │   │충정  관   몽천

           │           │       │   └忠貞 ─灌  ┬夢天

           │           │       │           │몽필

           │           │       │           └夢必

           │           │       │여홍  충좌  송   중무

           │           │       └汝洪 ─忠佐 ┬松  ─仲茂

           │           │               │회   함진

           │           │               ├檜  ─含眞

           │           │               │빈

           │           │               └彬

           │           │정해  각   내홍  충익  남

           │           └正海 ─珏  ┬乃洪 ─忠翊 ─楠

           │                   │구홍  충식  조   엽

           │                   └九洪 ┬忠植 ─祚  ─燁

           │                       │충직

           │                       └忠直

           │림   호   공균  대   자수  전   충윤  운택  계

           ├琳  ─昊  ─公均 ─玳  ─資壽 ─佺  ┬忠潤 ┬雲澤 ┬係 →학사공림파

           │學士公                    │   │   │입

           │                       │   │   └立

           │                       │   │운호

           │                       │   └雲浩

           │                       │충한

           │                       └忠漢

           │종지  언   방로  근성  습용  홍   흥무  구정  산해

           └宗祗 ─彦  ─邦老 ─近成 ─濕龍 ─洪  ─興茂 ─九精 ┬山海 →진사공종지파

            進士公                            │치해 

                                           └峙海 →참봉공치해파

                                           參奉公

 

慶州崔氏 2세- 善之(선지) 後孫 係派圖


1세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10세 11세 12세  파명

최치원    ○○   ○○    선지  적손  백유  인지  선   함일  홍재  호 

崔致遠 ─○○ ─○○  ─○○  ─善之 ┬適孫 ─白楡 ─仁祉 ┬墠  ─咸一 ─弘載 ┬灝  →정량공호파

                密直公│           │           │正郞公

                   │           │           │예 

                   │           │           ├汭  →사성공예파

                   │           │           │司成公

                   │           │           │한 

                   │           │           └漢  →송오공한파

                   │           │           松塢公

                   │           │제   함대  홍기  종식

                   │           └堤  ─咸大 ┬弘起 ─宗式 →문밀공제파

                   │            文密公    │홍원  연

                   │            (密城君)    └弘遠 ─演

                   │적립  종유  인호  돈예  정분  간   석

                   ├適立 ┬宗楡 ┬仁護 ─敦禮 ┬正芬 ─澗  ┬碩  →동성군종유파

                   │   │東城君│       │       │적

                   │   │   │       │       ├磧

                   │   │   │       │       │린

                   │   │   │       │       └磷

                   │   │   │       │정화

                   │   │   │       └正華

                   │   │   │인모

                   │   │   └仁謨

                   │   │종재

                   │   └宗梓

                   │사직  종빈  환   광포  적   백윤  해

                   └斯直 ┬宗斌 ─讙  ─光褒 ─勣  ─伯倫 ┬瀣  →문정공해파

                       │                   │文正公

                       │                   │지

                       │                   └潪

                       │종식  지미  종태  불타  근   양수

                       ├宗識 ─之美 ─終泰 ┬佛佗 ─斤  ─良守 →영흥백지미파

                       │    永興伯      │한기  호연  지덕

                       │           └閑奇 ┬浩延 ┬之德

                       │               │   │동정

                       │               │   └同正

                       │               │방보  원덕

                       │               └方甫 ─元德

                       │득용  읍송  수경  갑   유천  돌

                       └得龍 ─邑松 ─水京 ─甲  ─有川 ─突  →목사공득룡파

                         牧使公

慶州崔氏 5세- 光位 (광위) 後孫 係派圖  

1세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10세 11세 12세  파명

최치원             광위     종포      일      재연    석기   영렬    안립    렴   

崔致遠 ─○○  ─○○  ─○○  ─光位   ─宗浦   ─逸   ─再延   ┬石琪   ─英烈   ─安立 ┬濂   →찬성공파

                忠烈公             │           │贊成公

                                │           │로

                                │           ├潞   →충렬공광위파

                                │           │정 

                                │           └瀞    →생원공정파

                                │           生員公

                                │경기      창락     택기     한

                                └ 瓊琪  ─昌 洛  ─宅 基  ─瀚  →정랑공경기파

                                正郞公

慶州崔氏 8세-애(애) 後孫 係派圖


1세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8세  9세  10세 11세 12세  파명

최치원                         애   현우  습   계운  첨노

崔致遠─○○ ─○○ ─○○ ─○○ ─○○ ─○○ ─藹  ┬玄祐 ┬隰  ┬繼雲 ─添老 →화숙공현우파

                            版圖公│和淑公│   │서운  이

                               │   │   ├瑞雲 ─邇

                               │   │   │근운  신노

                               │   │   └瑾雲 ─信老

                               │   │연   방준  침

                               │   ├陾  ┬方濬 ┬沈

                               │   │   │   │근

                               │   │   │   └瑾

                               │   │   │안준  전

                               │   │   ├安濬 ┬洤

                               │   │   │   │징

                               │   │   │   └澄

                               │   │   │원준  석현

                               │   │   └元濬 ─石賢

                               │   │주   상렴  인

                               │   └周  ┬尙濂 ┬寅

                               │       │   │주

                               │       │   └宙

                               │       │상겸  식

                               │       └尙謙 ┬寔

                               │           │실

                               │           └實

                               │광우  자연  중경  흡

                               └光祐 ─自然 ─重敬 ─洽  →밀직공광우파

                                密直公

중조언위  광윤                        

中祖彦위 ┬光胤                        

     │행귀                        

     ├行歸                        

     │광원  항   유부  공익  지   충구  정번  지목  숭   혼연  빈

     └光遠 ─沆  ┬有孚 ─公翊 ─贄  ─忠球 ─正藩 ─之牧 ─崇  ┬渾然 ─濱  →절의공항파

          節義公│                           │호연  위

             │                           └浩然 ─渭

             │영부

             └永孚

 

 

慶州崔氏 後孫 系派圖 경주최씨 후손 계파도

                                                           
                                                           
                                                               
   
                                     
                                             
               
                                     
                                           
           
                                     
                                                 
                                       
                                       
                                                 
       
                     
                                         
               
                 
                                     
                   
                 
            ?                    
         
           
                         
   
   
                           
   
 
                   
 
 
   
     
使
   
   
   
   
   
   
   
   
   
   
   
                                 

 

 

충렬공휘광위(忠烈公諱光位)

충렬공(忠烈公): 최광위(崔光位) - 최사형(崔士亨)의 맏아들[長子], 신라 문창후(文昌侯) 고운(孤雲) 시조(始祖)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5세손(世孫) 

공(公)의 휘(諱)는 광위(光位)요 초휘(初諱)는 광훈(光勳)이며 자는 사격(四格)이고 호는 청량헌(淸涼軒)이며 시호(諡號)는 충렬(忠烈)이시다.

고려지방 오랑케를 토평한 공으로 광위라는 사명을 받았다. 고려 때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으로 봉군 되었고 상장군벽상(上將軍 壁上) 삼한삼중대왕(三澣三重大匡) 내사령(內使令)을 역임하시다.

배위는 두 분이시다. 용궁(龍宮) 전씨(全氏) 하만(可萬)의 여식이며, 정부인(貞夫人) 이시다. 또한 경주(慶州)이씨(李氏) 명정(明正)의 여식이며, 역시 정부인(貞夫人)이시다.

-상장군: 고려 때 각 군영의 으뜸장수 정3품으로 2군 6위에 1명씩 두었다.

忠烈公諱光位  충렬공휘광위

石琪 – 瓊琪(正郞公派) 정랑공휘경기(正郞公瓊琪 正五品)

       

十世 英烈

       

安立

      

濂(贊成公派) – 潞 – 瀞(生員公派) 생원공휘정(生員公)

         _____________┃

        潞子

孟濟(承旨公派) - 仲濟(縣監公派) - 季濟(監司公派)

찬성공휘렴(贊成公諱濂 從一品)

승지공휘맹제(承旨公孟濟 正三品)

현감공휘중제(縣監公仲濟 從六品)

감사공휘계제(監司公季濟 從二品)

 감사공휘계제(監司公諱季濟) 

감사공(監司公): 최계제(崔季濟) - 최로(崔潞)의 세째[叔] 아들, 신라 문창후(文昌侯) 고운(孤雲) 시조(始祖)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13세손(世孫) 

공(公)의 휘(諱)는 계제(季濟)요 자(字)는 회약(會若)이고 호(號)는 묵념(黙念)이며, 자헌대부황해감사(資憲大夫黃海監司)이시었다.

부(父)는 ()이시고, 母는 금성(錦城) 전씨(全氏) 진사(進士) 경행(敬行)의 여식이며, 역시 정부인(貞夫人)이시다.


충렬공휘광위파(忠烈公諱光位派) 항렬자(行列字) 표(表)[(시조(始祖)로 1세]


慶州崔氏 
世 諱光位 後孫 系派圖 경주최씨 5세 휘광위 후손 계파도

                                                           
                                                           
                                                             
                               
                                             
                                                     
?    
                   
                                     
         
         
                                 
        西        
               
                             
               
               
                               
               
               
                                         
?        
                 
                                     
                   
                           
                                     
廿                              
                             
                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廿
                     
                                                 

 

경주최씨(慶州崔氏) 충렬공휘광위운손(忠烈公諱光位雲孫) 감사공휘계제손(監司公) 첨지공휘득한파(僉知公得漢派) 상계세계도(上系世系圖)

始祖(시조) 최치원(崔致遠) 新羅末憲安王元丁丑857年生

            字孤雲 號海雲 諡文昌候

二世(2세)

           

三世(3세) ○ ○

           

四世(4세)

           

五世(5세) 光位광위 高麗

            封鷄林君諡忠烈 상장군(上將軍)ㆍ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시호(諡號): 충렬(忠烈)

            忠烈公諱光位派 충렬공휘광위파

世(6세) 宗浦종포

            월성군(月城君)

世(7세) 逸일

            첨의정승(僉議政丞)

世(8세) 再延재연 鱉山君

            ┃평리(評理)

世(9세) 石琪석기瓊琪경기 正郞公瓊琪

            ┃石琪子석기자

十世(10세) 英烈영렬

             

(11세) 安立안립

             ┃낭장(郎將)

(12세) 濂렴潞로瀞정  贊成公濂派 生員公

              _______ 高麗末朝鮮太祖定宗太宗朝 

             潞子로자

(13세) 孟濟맹제 - 仲濟중제 - 季濟계제 承旨公孟濟派 墓靑陽大峙光大 

               _____________________ 縣監公仲濟派 始居光州光山大村

               資憲大夫黃海監司(從二) 朝鮮定宗2庚辰1400年生 配韓山李墓公州斗巖

              季濟子계제자 監司公濟派 감사공휘계제파

(14세) 汲급永生영생漢佑한우可源가원 從仕郞(正九) 宜寧宮柳 陜川三嘉

               ______┃ 司憲府直長(從七) ㆍ叔 三陟府使(從三蔚珍 月坡公諱澤漢派 居羅州細枝東

              永生子영생자

(15세) 得漢득한 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正三) 墓光州極樂佛公五浪

              僉知公得漢派 첨지공휘득한파

十六世(16세) 麗㴽려설

              

十七世(17세) 天寶천보 通訓大夫興陽縣監兼統將(從六)

             

十八世(18세) 宗唐종당

              

十九世(19세) 鳳吉봉길德吉덕길 海南縣監 墓五浪洞

                 ___________ 宣祖25壬辰1592年 與兄俱戰沒于閒山 墓五浪洞

        早失父德吉子덕길자 

二十世(20세) 大崑대곤 宣祖20丁亥1587年8月10日生 仁祖27己丑1649年10月15日終 墓光州極樂佛公五浪

               

二十(21세) 碩慕석모 仁祖5丁卯1627年2月15日生 肅宗13丁卯1687年8月18日終 墓佛公里

               

二十(22세) 世百세백 – 世信세신 墓佛公里

                 __________┃ 孝宗元庚寅1650年3月3日生 肅宗32丙戌1706年3月15日終 松汀新村

                ┃世信子세신자

二十(23세) 慶緯경위 顯宗11庚戌1670年8月15日生 肅宗46庚子1720年5月27日終 新村

               

二十(24세) 宗秀종수宗垕종후宗麗종려 ㆍ伯  新村

                ┃__________ ㆍ伯 肅宗15己巳1689年8月3日生 英祖30甲戌1754年4月24日終

                         宗秀子종수

二十(25세) 萬之만지殷之은지 單부단

                 __________ 英祖7辛亥1731年1月15日生 正祖15辛亥1791年4月1日終 墓羅州老安道山

                殷之子은지자

二十六世(26세) 祿淳록순 - 奎淳규순 ㆍ伯 英祖31乙亥17551013日生 622日 墓羅州老安道山

                ┃

               祿淳子록순자

二十七世(27세) 相守상수 - 相學상학 - 相敏상민

                ┃ㆍ伯 正祖9乙巳1785年生 12 28 墓羅州老安道山

                ┃相守子상수자

二十八世(28세) 志煥지환 - 炳煥병환

                ┃ㆍ伯 純祖16丙子18161226日生 12 18 墓光州榮樂公園

                ┃志煥子지환자

二十九世(29세) 基學기학 - 基行기행 伯 憲宗13丁未1847年6月18日生 忌2月16日 墓光州榮樂公園

               _________ 己酉184984日生 大韓帝國光武4庚子1900715日終 和順道谷孝山佛門

                ┃         ┃基學子기학자 基行系子기행계자

三十世(30세) 春鎭춘진 - 萬鎭만진 伯 高宗5戊辰1868年1月14日生 戊戌1898年3月26日終 墓光州榮樂公園

                ┃_________ 壬申1872814日生 甲戌1934827日終 墓光州榮樂公園

        早失父母         春鎭子춘진자 萬鎭系子만진계자

三十一(31세) 洙天수천 - 洙烈수열 ㆍ伯 墓光州榮樂公園

                 __________┃仲 高宗乙未1895年11月7日生 丁巳1977年5月1日終 墓靈巖新北

                ┃洙烈子수열자

三十(32세) 彩東채동 - 琯東관동 - 琦東기동 - 聆東영동 - 珍東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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